천용길 / 기자
날 좀 보소
한 평생 일군 논밭 위로
싸돌아 댕기는 헬기 보느라
여문 곡식 바지런히 거둬들일 들판으로
자리를 꿰찬 시커먼 경찰 보느라
꽁꽁 얼어붙은 이 노인네 얼굴을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곱게 분칠하고 수줍게 시집왔던
바드리 마을 부산댁 얼굴에 굽이굽이 그려진
주름살을
동화전 마을 양산댁 손등에 피어난
흙빛 주름꽃을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새끼 길러준
밀양 땅에 살다 가고 싶었구마
인자 저 철탑 들어서면
고마 살란다 아니 안 살란다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이치우 할배 가던 날
유한숙 할배 가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렸구마
눈물 훔치고 앉아있자니
헬기 날아다닐까 철탑 실어나를까
졸이는 마음에
분향소로 달려갔구마
근디
정든 임이 가시는데 인사도 못해
할배 할매
얼굴 좀 보소
날 좀 보소
곡식 지어내고
자식 농사 지으면서
욕보이지 않게 살았구마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아침을 맞자는
새마을 운동도 해봤구마
농협에서 빌려다 쓴
영농자금도 꼬박꼬박 갑았구마
나랏님 녹 먹는
경찰, 면사무소, 한전
우리는 다 믿었구마
인자 안 믿어
철탑에 목맨 조무래기들
곡식 알차게 여문
밀양 들판 좀 보소
우리는 철탑 물러날 때까지 아리랑 고개 넘을란다
밀양 촌놈 서울 촌놈 같이 넘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