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철1952년생 / 농부

 

대포댁

해방글터 4 1,472
핑생을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
대포 뻘밭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대목 설 장이리고 
한 다라이 이고 벌교 장에 가는길
문둥이 굴 지나며
꼬막 한사라 부어주며
오늘은 재수좀 있게 해 주씨요
빌면서 
시오리 장에 가는 길에는
아직 새벽별이 빼꼼하다

물아래 촌놈 촌년이라고 구석에
자리잡구.  옆 쌀전에는 흐연 쌀밥에
김이 모락하고
요번 설날에는 하얀 쌀밥이나
고봉으로 새끼들 먹여 봤으면
아무리 꼬막 함지 들꾸어 보아도
보리쌀 한되박도 안되고
꼬막처럼 오톨도톨한
대포댁 손등에. 파장이 밀려오고

돌아가는길 
문동이 고개길에서
문둥이 새끼덜아 재수좀 빌어더니
보리쌀 한되도 못 벌고 간다
꼬막 잘 쳐묵고 잘살아라. 
푸념이 

밀물처럼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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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글터
대포댁


핑생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
대포 뻘 밭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대목 설 장이리고
한 다라이 이고 벌교 장 가는길
나병굴 지나며
꼬막 한사라 부어주며
오늘은 재수좀 있게 해 주씨요
빌면서
시오리 장에 가는 길
새벽별이 빼꼼 했다

물아래 촌년이라고 구석에 자리잡구. 
옆 싸전 흐큰 쌀밥에는
김이 모락하고 침만 꼴딱 삼키며
요번 설 날에는
쌀밥이나 고봉으로
새끼들 한번 먹여 봤으면

아무리 꼬막 함지 들꾸어 보아도
보리쌀 한되박도 안되고
꼬막처럼 오톨도톨한
대포댁 손등에. 파장이 밀려오고

돌아가는 길
나병 고개길에서
문둥이 새끼덜아 재수좀 빌어더니
보리쌀 한되도 못 벌고 간다
꼬막 잘 쳐묵고 빙이나 나서라

장터에는그 많은 지게꾼',거지 ,. 쓰리꾼도
묵고 살라고 종일 쏘다니는데
저 굴속에 움크리고만 사는 사람들
시안에 뭘 묵고 살랑가 ?
문등이 같은 시상
대포댁 함지박 보리쌀 한되박이
쉬이 ,고개을 넘지 못하고 있다



(60년도 벌교에는 산마루 곳곳에는 나병환자들이 토굴속에서 살았고
우리들은 무서워 그 고갯길 다니지도 못하고 몇명씩 모여서  고갯길을 넘어 다녔다
장꾼들은 폴다 남은 작은 먹거리를 고갯길에 남겨주는 인정도 있었다
하기사 군사쿠테타 이후 첨으로 국민 소득이라고 발표 했는디 일년 소득이 백불 이하였다
역전에는 지게꾼 쓰리꾼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피나는세월이었다
그래도 봄이면 꽃은 피고
학교에는 아이들이 득실거리고
아득 하지만 우리시대 그 삶들은 지금어디에도 없다
못나고 촌스웠다고.  지금 번지르 산다고 우리 아비 어미들의 고단한 삶들이 자가용에 고층아파트 숲에 가려. 뒤안도 보지 않으려는 세상
나는 앞으로도 뒤안을 더 파보면서 살자 한다
해방글터
박상화 : 시상을 그냥 쓰고 버리지 마시고, 탈고를 자꾸 해보셔요. 것두 하시다 보면 익숙해지고, 요령은 안되는 탈고는 냅뒀다 나중에 하시고, 잘 될때가 있어요. 그때 하세요. 안되는 거 붙잡고 씨름하면 지치세요. 어떤날은 다 부끄럽다가 어떤날은 다 괜찮아보이기도 하고 그래요. 그건 대작가들도 마찬가집니다. 써서 물에 띄워보내면 낭만은 있는데 남는게 없어요. 탈고하시면서 잘썼다 싶은 남들 시를 한번씩 읽어보시고 비교해보시면 탈고할 꺼리가 하나씩 보이실 거예요. 시상만 쓰면 반짝이는건 있는데 풍성하지 못해요. 인광을 내는 뼈만있고 살집이 없는 거예요. 찰흙다듬듯 이야기를 보태고 또 빼셔야 눈이 좋아지세요. 그 훈련이 되면 형님시의 결이 생기실 거예요. 열정이 남다르셔서 형님은 일가를 이루실거예요. 남의 시를 보면 그 시에서 어떤 빛나는 단어들이 보이실 거예요. 그런 단어들을 잘 기억했다가 두번만 써먹어보시면 내 단어가 됩니다. 그걸 자꾸 쌓으시고, 또 하나는 시점을 일치시키시고, 기승전결이 맞는가, 잘 꾸려졌는가도 보세요. 혹시 얘기가 머릿속엔 남았는데 문자엔 빠지지 않았는가, 소리내어 읽어봐서 지루하거나 건너뛰진 않았는가 까지만 보시면, 탈고는 끝이예요. 왜 처음 일배우는 사람은 용을써도 일이 안되쟎아요, 일머리처럼 시도 요령이 있는데, 형님은 너무 대쪽같이 쓰셔서 그래요. 요령이 안붙으면 나무를 다듬는게 아니라 장작 쪼개듯 되니까 좋은 시상과 열정이 아깝게 됩니다. 김사인, 김신용 작가의 시가 요령이 많습니다. 시쓰실때 먼저 한편 읽어보고 써보세요. 무심코 요령을 베끼게 되고 자연스레 시가 좋아지실 거예요. 무람한 말씀을 드린게 아닌지 죄송합니다.
형님, 근데 이 시에서 벌교에서가 부제에요, 아니면 시의 첫연첫행이에요?

김영철 : 늘 경박함에 한호흡에 글 쓰니 그렇지.  ㅎ. 그라고 벌교에서는. 부제로 모아놓고 보려고.  자꾸 깨워 주길 바라네 고맙네

박상화 :
때론 저도 제 시가 안보여서 누가 이런 식으로 퇴고를 해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때가 많아서, 외람되지만 한번 써 보았습니다. 시가 좋으니 잘 다듬어 내시는데, 참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포댁

벌교에서
-> '벌교에서'는 아래 연에 '벌교장'이 있어서 장소가 벌교인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것 같아요. 벌교 연작을 의미하는 부제가 아니라면, 이 행은 독립연으로 있을 의미가 없어보이니까, 빼는게 낫습니다.

핑생을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
-> 평생을 핑생이라 입말로 쓰신건 괜찮습니다.
1. 핑생을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
2. 핑생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을을 뺌)
3. 핑생을 꼬막 캐고 살았던 대포댁(만을 뺌)
4. 핑생 꼬막 캐고 산 대포댁(을,만,살았던을 뺌)
이렇게 줄여도 뜻은 통하는데, 느낌이 조금씩 다르죠.
줄여놓고 처음걸 다시 읽어보면, 늘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근데 너무 줄이면 숨막히는 느낌이 납니다.
다시 읽어보고 가장 편안한 호흡을 주는 행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대포 뻘 밭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 원래는 '허리까지 빠지는 대포 뻘 밭'이 자연스러운데, 도치법을 쓰셨어요. 도치법은 강조할 때 쓰는데, 발음이 강해집니다. 가령 김남주의 시에 도치법이 많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나는'같은 표현이죠. 다음 행하고 묶어서 읽어보면,
 허리까지 빠지는 대포 뻘 밭에(서)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럽지만, 시의 재미는 좀 적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허리까지 빠지는'이 시적 장치입니다. 뻘밭에서 허리까지 빠진다는 풍경묘사이기도 하지만, 삶이 허리까지 빠지는 힘겨움 속에 있다는 은유도 되거든요. 뻘=삶이 되는거죠. 이게 은유(메타포)입니다.
똥같은 소리, 별같은 눈빛,처럼 같은을 써서 똥=소리, 별=눈빛이 되는 비유는 직유(직접 비유함)라고 합니다. 은유는 숨을 은자를 써서, 숨겨서 비유한다는 말입니다. 이 시에서 뻘이 삶이라는 말은 없는데도, 뻘의 힘겨움=삶의 힘겨움으로 읽는다면, 그게 은유가 되는 겁니다. 허리까지 빠지는이 앞에 있건 뒤에 있건 은유는 성립됩니다. 저는 그 은유를 도치법을 써서 강조한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러니 좀 더 강한 표현이 됩니다.
 대포 뻘 밭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다만, '밭에는'이 걸리는데, 읽다보면, -는-는이 겹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미(말끝)가 겹치면, 지시하는 목적어가 얼른 안들어 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호흡이 걸립니다.
 대포 뻘 밭,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이럴때, 콤마를 자주 씁니다. 사실 원래는 -밭에는이 아니라 -밭에서는이 되어야 맞겠습니다. 
소리내어 읽어보길 권하는 이유는 이런데 있습니다. 자연스러운가, 원하는 부분이 강조되는가 하는 것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확인하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도 읽어보세요.
1.대포 뻘 밭, 허리까지 빠지던
 몸빼 바지는 성할 날이 없었다
2.대포 뻘 밭,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은 없었다
조사(토씨)가 의외로 힘이 세다는 걸 느끼실수 있을 겁니다. 조사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죠. 낭송할 땐 더 그럴 겁니다.

대목 설 장이리고
-> 이라고. 보통 '설 대목장'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바른 표기는 '대목장'으로 붙여쓰고, 읽기는 '대목-장'으로 길게 읽습니다. '대목장'으로만 쓰면 큰목수를 뜻하는 대목장, 목장중에 큰 목장하고 헷갈립니다.(문맥상 그렇게 안되겟지만 ^^) 그래서 대목 설 장이라고 띄어쓰신 것이 편하게 읽힙니다. '설밑 대목장을 보러''대목 설 장을 보러'처럼 '보러'를 써도 좋습니다. 

한 다라이 이고 벌교 장에 가는길
-> 다라이는 왜말이지만, 워낙 많이 쓰던 당시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장감을 늘려줍니다. 굳이 국어로 바꾸면, 함지가 되는데, 어감이 함지는 나무함지를, 다라이는 빨간 고무함지를 뜻하는 느낌이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다라이를 선호합니다. 밑에는 꼬막 함지라고 함지를 쓰셨는데, 보통은 용어를 통일해 주는게 좋지만, 이 시의 경우는 왠지 같은 물건인데도 다라이는 다라이대로 함지는 함지대로 잘 어울립니다. '장에'에서 에는 빼도 됩니다. 가는 길은 띄어 씁니다.

나병굴 지나며
-> 경기도는 보통 문둥이굴, 문둥이 마을로, 경상도는 문디-(로 했겠죠?) 표현했는데, 나병굴도 맞습니다만, 벌교이야기기 때문에 벌교에서는 당시에는 어떤 단어로 썼는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문디굴로 쓰면 갑자기 경상도말이 나오니 어색하겠지요. 한하운 시인은 문둥이로, 종교단체등에서는 나병환우로 썼었습니다.

꼬막 한사라 부어주며
-> 사라는 접시 아닌가요? 꼬막 한 사발이 맞을 텐데, 당시 거기서는 사라라고 썼었는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사라라고 썼었다면, 사라가 한국에 와서 접시만을 뜻하지 않고 사발의 의미까지 널리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용례가 되겠네요. 이런 경우는 나중에 학자들이 용례수집할 때 예시문으로 쓰이므로, 살아있는 문장이 됩니다.
접시의 일본어는 그릇명자를 쓰고 '사라'라고 읽고, 사발은 우물정자가운데에 점을 찍은(우리가 흔히 퐁당퐁자라고 우스개소리하던 글자)를 쓰고 '돈부리'라고 읽거나, 그릇완자를 쓰고, '와니'라고 읽습니다.

오늘은 재수좀 있게 해 주씨요
-> 재수 좀

빌면서
시오리 장에 가는 길에는
-> 여기도 -에-에가 중복되죠. 이 표현이 맞는데, 저는 이렇게 바꾸어 보기도 합니다.
 시오리 장을 가는 길에는
 시오리 장에 가는 길 위로

아직 새벽별이 빼꼼 했었다
-> 했었다도 좋고, 하였다는 어떤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맨 마지막 연에 '떠밀고 있었다'하고 운을 맞추는 지점인데, '떠밀었다'는 어떤가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떠밀었다'떠밀곤 했었다''떠밀고 있었다'등의 변화가 있고, 의미가 미세하게 다르니 만큼 읽기에 편하고 전체와 호흡이 맞는 걸 골라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물아래 촌년이라고 구석에
-> 꼬막잡이꾼을 물아래 촌년이라고 표현한게 눈에 확 띄네요. 좋은 표현입니다. 이런 말은 그때 거기 살던 사람 아니면 모르는 말이지요.

자리잡구.  옆 쌀전에는 흐큰 쌀밥에
김이 모락하고 침만 꼴각삼키면서
-> 꼴각은 꼴깍의 작은 표현이 될텐데, 이런 표현은 허용된다고 봅니다.

요번 설 날에는 하얀 쌀밥이나
고봉으로 새끼들 한번 먹여 봤으면

아무리 꼬막 함지 들꾸어 보아도
-> 저는 처음에 '들추어'를 잘못 쓰신건줄 알았는데, '들어서 바닥을 보다'는 '들추어'가 아니라, 내용상 '쓸어 뒤집다'는 의미라, 벌교에서 쓰던 '들꾸어'라는 용어가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들꾸어가 맞다면,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안나오는 생생한 현짓말을 발굴해 내신게 되겠습니다.

보리쌀 한되박도 안되고
-> 한됫박이라 발음대로 쓰는게 더 나은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꼬막처럼 오톨도톨한
대포댁 손등에. 파장이 밀려오고
-> 이 부분이 또 은유입니다. 꼬막=손등, 손등=파장, 주름=파장인데, 근심스런 노동의 손등에 어찌해 볼 수 없는 파장이 밀려온다는 표현이 압권입니다.


돌아가는길
나병 고개길에서
-> 여기도 고갯길을 발음해 보시고 좋은 걸로 쓰시기 바랍니다.

문둥이 새끼덜아 재수좀 빌어더니
-> 재수 좀 빌었더니

보리쌀 한되도 못 벌고 간다
꼬막 잘 쳐묵고 빙이나 나서라

살수록 푸념만 늘어가고
함지박 보리쌀 한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고 있었다
-> 떠밀고 있었다는 아까 말씀 드렸고, 떠밀고 있었다가 미세한 차이속에서 적절해지려면, '살수록 푸념만 늘어가고'행이 조금 맞춰져야 합니다.

1. 살수록 푸념만 늘고
  함지박 보리쌀 한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고 있었다

2. 살수록 푸념만 느는데
  함지박 보리쌀 한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곤 하였다

3. 살수록 푸념만 느는데
  함지박 보리쌀 한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었다

쓰고 읽어보니 저는 2번이 좋네요. 1번도 괜찮고요. 3번은 좀 안맞는것 같습니다.

잘 퇴고 하시고, 추가로 쓰신,

역전에는 지게꾼 쓰리꾼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피나는세월이었다
..
못나고 촌스웠다고.  지금 번지르 산다고 우리 아비 어미들의 고단한 삶들이 자가용에 고층아파트 숲에 가려. 뒤안도 보지 않으려는 세상

등의 내용이 시에 더 녹아나면 더 풍부해 지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본시가 잘 짜여져 있어서, 덧대어 어디다 녹여 넣을지 저도 잘 못찾겠고요, 잘못하면 짜임을 흔들 수도 있고, 내용을 풍부하게 넣는 것이 시선을 교란시킬 수도 있겠다 싶어서 너무 무리는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주접스럽다 마시고, 이런 식으로 퇴고를 해 나가시면, 될것입니다. 때론 강조를 위해서 행과 연을 바꾸고 시간 배치를 바꾸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실 때는 자칫하면 전달성이 떨어져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조심해서 하셔야 합니다.

박상화 : 제가 말씀드린 외에 몇가지 더 바꿔서 퇴고까지 해 보았는데, 형님 퇴고 다 하시고 퇴고본 올리시면, 그때 한번 비교해 보시라고 올려드리겠습니다.

박상화 : 고맙습니다. 원래 남의 시에 감놔라 배놔라 하면 안되는데, 형님께서 퇴고문제로 어려우신것 같아서, 욕먹겠다 싶으면서도 썼습니다. 한번쯤 의논하며 퇴고를 해보실 필요가 있을것 같아서요. 혼자 퇴고하면 안보일때가 정말 많거든요. 첫맘에 들었다가도 퇴고하다 너덜해지고 피곤하고 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수필쓰실때도 그러실 줄 압니다. 그러니 다른 눈으로 의견을 말해주면 자기 길이 더 잘보이게 되거든요. 근데 참 조심스런 일이긴 합니다.

김영철 : 벌교가 다시 들여다 보이네 원래 남도말이 투박도 하지만 부사가 좀많아 정도 있고 속깊은 말 많다네. (들꾸어 보아도 )는 들어 까불어보아도의. 잔형적인 벌교 말이다네 ) 당시 벌교는 일제의 잔재에 일본어가 생활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네. 자네 글 읽고나니 벌교가 다시 새롭게 다가 오고있네. 흘러가 버린 세월을 다시
깁다 보니 여러카지 부족을 실감 하네만 그래도. 그때 그 지난한 삶에 왜그리 내 목이 매일까. ?
충 효가 아닌 국가가 아닌 민중의 삶을 그려내려 하니
아득 하지만 그래도 어찔건가?
내 태가 묻히고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인데.
많이 도와 주시게
후일 막걸리 한잔 사것네 ㅎ

조선남 :

詩의 時點

  빛바랜 사진 한 장, 그 유년의 기억이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기억이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고 볼 때마다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발견된 한 장에 사진에서 눈물이 핑 돌때가 있습니다. 그 우연이 어떤 날일까요? 왜 하필 그날 눈물이 핑돌았을까요? 거기에는 필시 어떤 사건이 있거나, 감정의 이입이 있는 우연일 것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시에서 감흥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낡은 사진을 찍던 날 극적인 상황이 있었거나, 그 사진을 찍던 날 있었던 사람이 현재는 없거나, 그 사진을 보면서 인생무상이나, 회한이 있을 경우 일 것입니다. 이럴테면 사진 속에서는 아주 기쁜 날이었는데 그 사진 속에 주인공이 현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리워져 눈물이 나고 詩를 쓰게 됩니다. 자 이럴 경우, 시의 시점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됩니다. 똑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두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감흥의 시점이 어디이고 무엇인가?
 
시의 전개는 이렇게 전개 됩니다.

평생을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이라는 아줌마가 있었다. 대포 뻘밭은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설 대목 장이라고 한 다이리 이고 벌교 장에 가는 길 나병 굴 지나며 고막 한사라 부어주며 오늘은 재수 좀 있게 해 주소 빌면서 시오리 장에 가는 길은 새벽별이 반짝이이는 이른 새벽이었다.

대포댁의 바람은 하얀 쌀밥이나 고봉으로 새끼들 한 번 먹여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쌀전 옆에 전을 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보리쌀 한되박도 안되는 매상으로 대포댁은 실의에 빠졌다.

돌아가는 길,
나병 고갯길에서
꼬막 잘 쳐 묵고 빙이나 나서라....하고 인간적인 휴머니즘이 돋보인다.

살수록 푸념만 늘어가고 함지박 보리쌀 한 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고 있었다.

대포댁이라는 벌교 사람이 생각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에서 시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적 생활의 한 풍경을 보여 주고 싶었을까? 어릴 적 생활을 한 풍경을 꺼집어 내어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 부분이 명징하게 들어 나면 시의 맛이 살아나고 풍성해 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향도의 언어 사투리의 구수함에 빠져 글을 썼는데 내가 써 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 시인이 하고자 하는 핵심, 감흥이 발현되었던 동기가 흐려지면 실패한 작품이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시인이 대포댁이라는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여기 이 시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 수많은 풍경이 있지만 카메라 앵글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중심으로 시는 전개 되는 것입니다. 

핑생을 꼬막만 캐고 살았던 대포댁. - 상황설정입니다. 대포댁은 이 시의 주인공 화자입니다. 그리고 대포댁의 삶을 다룹니다. 대포댁은 꼬막을 캐고 사는 사람입니다.

대포 뻘밭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 꼬막 캐는 노동의 어려움과 삶을 이야기 합니다.


대목 설 장이라고
한 다라이 이고 벌교 장에 가는 길 – 좀더 구체적인 상황 설정입니다. 설 대목을 앞둔 겨울입니다.

나병 굴 지나며
꼬막 한사라 부어주며
오늘은 재수 좀 있게 해 주씨요
빌면서
시오리 장에 가는 길에는
아직 새벽별이 빼꼼 했었다. - 어쩌면 이 시점이 시를 쓰게 된 동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해안 마을, 나병을 앓는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살던 나병 굴...... 아무리 가난하지만 재수 있게 해 달라고 빌며 꼬막 한사라 부어줍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정입니다. 말은 재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지만 사실은 나눠 먹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
나병 고개길에서
문둥이 새끼덜아 재수 좀 빌어더니
보리쌀 한 되도 못 벌고 간다
꼬막 잘 쳐 묵고 빙이나 나서라 – 이 시에서 극점은 여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문둥이 새끼덜어 재수 좀 벌었더니. 보리쌀 한 되도 못 벌고 간다 꼬막 잘 쳐 묵고 빙이나 나서라...... 병이나 나서라고 오히려 그 염원을 빌어주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지 않습니까?

살수록 푸념만 늘어가고
함지박 보리쌀 한 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고 있었다 –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애써 기승전결로 끌어 올린 시적 긴장을 아무 이유 없이 풀어 버립니다. 만약에, 여기에서 대포댁이 몸도 성치 않은 빙신들이 이겨울을 어찌날꼬 푸념 한 토막이라도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신도 자식새끼들에게 흰쌀 고봉밥 먹이는 것이 소원이고 그 밥을 먹이기 위해 몸빼 바지가 성할날 없이 뻘밭을 헤메며 꼬막을 깼는데, 나병 굴 앞을 지나면 꼬막 한 사라내 내어주는 마음이며, 보리쌀 한 되박 못팔아도 잘 묵고 어서 병 나으소 하고 비는 마음이 바로 서민들의 마음이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휴머니즘일텐데. 그렇게 팽팽하게 시적 긴장을 이끌어 왔으면서 일시에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영철 :

화자는 대포댁이었는데.  내 글의 한계 상황이네 종장에 긴장이 풀어져 버리네 나도. 
잘 배우고 고맙네 더 가다듬어 봄세.

김영철 : 귀한 글들이네 몽땅 홈 자료실에 올렸음 하네.  ㅎ

박상화 :
선남형은 이 시에서 나병굴에 대한 마음을 중심으로 봤다면, 저는 등떠미는 보리쌀 한 되로 봤습니다. 미인을 볼때 누구는 눈을 보고 누구는 귀를 보는 식이겟지요. 어제 말씀드린 대로 제가 수정한 본은 이렇습니다. 의미가 없겠지만, 비교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으실 겁니다. 형님이 이 시를 쓸 때 어떤 점을 눈여겨 보고 쓰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점을 생각해 보시고, 정리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대포댁
  - 1960년 벌교에서

                  -김영철

핑생 꼬막 주름골에 살았던 대포댁
대포 뻘밭, 허리까지 빠지는
몸빼 바지였던 대포댁

설밑 대목 보러
한 다라이 이고 벌교장場 가는 길
나병굴 지날 때
꼬막 한사라 부어주며
오늘은 재수 좀 있게 해 줏씨요 빌면
장場에 가는 시오리 길 위로
새벽별 아직 빼꼼하였다

지게꾼, 쓰리꾼 , 거지들 우굴대는 역전
물아래 촌년은 구석자리
옆 쌀전서 짓는 흐큰 쌀밥에
김이 모락한 침만 꼴각삼키면서
요번 설에는 하이얀 쌀밥
새끼들 한번 고봉으로 먹여 봤으면

꼬막 함지 아무리 들꾸어 보아도
보릿쌀 한됫박이 안되는 뒤안
꼬막처럼 오톨도톨한
대포댁 손등으로 파장이 밀려왔었다

돌아가는 나병 고갯길에서
문둥이들아 재수 좀 빌었더니
보리쌀 한되도 못 벌고 가네
꼬막 잘 묵고 빙이나 낫으씨요

그래도 봄이면 꽃은 피고
학교에는 아이들이 득실거렸다
살수록 푸념만 느는 뻘밭
함지박 보리쌀 한되가
대포댁 등을 떠밀곤 하였다

조선남 :
김영철 형님 성웅가 안카든가베 목숨 걸고 시 쓰라고, 자꾸 한계라 하지말고 시어 하나에 성부를 걸어봐요

김영철 :

조기현 고맙네 그래도 나는 남도의 촌스러운 글이 내 ,색깔이네 시 로서는 품위가 없어도 내 고향 말과 그 투박한 뚝배기같은 못남에도 함께 어부러진 풍갱을 글로 수채화을 그리고 싶다네 왜 내가 그림을 배우지 못했을까. 글 보단 미술을 했어야 하는디 ㅎㅎ
해방글터
조선남 :

김영철 - 김영철 시인께드리는 말씀 -
남도의 풍광과, 민초들의 아픔과 그 아픔속에서도 오롯이 살아나는 민중들의 풍부한 해학을 문학으로 혹은 시로 남기는 작업은 어슬프게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품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투박한 뚝배기 같은 못남과 잘남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정신입니다.
 여러번 형님을 뵙고 시에 대해서 말씀드릴때 형님은 설쩍 피해버립니다. 언어는 뚝배기같이 투박해도 그 속에 담긴 시적 긴장과, 예리하게 번득여야 할 작가정신에서는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의 전 생애가 고스란히 시에 담겨질 때도 있습니다.
 시어를 배열하는 문제가 아니라, 앞행과 뒷행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한 편의 시에 모든 것이 담겨져야 합니다. 투박하기로야 김남주 시인의 시가 얼마나 투박합니까? 그런데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읽으면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중언부언도 없습니다. 촌철살인의 작가정신이 남도의 투박한 언어로 재현됩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시를 처음 쓸때는 아마 형님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때 였을 것입니다.
 동생들의 이야기를 잔소리라 생각하지말고 좀더 깊이 있게 사색하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셔야 합니다. 노동자 시인 민중시인이라고 우리끼리 시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형님처럼 풍부한 삶의 체험과 서리발같은 삶을 살아 오신 분이시기에 시의 감흥의 촛점을 잡아내는 것은 잘 하십니다. 누구보다 예리하게 잡아내십니다. 그런데, 그기에서 멈춰버립니다. 지난번 제가 서울갔을 때도 말씀드렸듯이 탈고의 과정도 창작의 과정입니다.

-  합평과 비평이 없는 문예조직은 죽은 조직입니다.  -

여전히 해방글터가 아마추어적인 동호회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방글터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해방글터의 이런한 자기 수련과정을 통해 빚어 낸 시들이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참에 해방글터의 많은 글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글에 가장 문제가 많지만 다른 시인들의 글들도 불필요한 첨언이나, 정재되지 않은 시어들이 툭툭 튀어 나옵니다. 부끄럽습디다. 그러나, 과정이었지요 우리들에게는 전문적인 시인이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전업작가는 0.1%도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형님, 김영철 시인이 아니면 안되는 시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도의 투박한 민중들의 삶을 문학으로 시로 승화시키고 재현시켜 내는 것입니다. 지식인의 눈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냈던 가난한 민중의 가슴과 눈으로 말입니다. 더이상 피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세요....

탈고가 없는 시는 습작이거나, 낙서가 됩니다. 비망록의 언어들이 되고 맙니다. 어느 순간인가 우리들은 우리들의 시에 대해 합평하기를 꺼려하고, 비평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싫은 소리 하기 부담스러웠던 것도 있고 게으럼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화자찬의 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 눈에도 보이는데 다른 사람의 눈엔들 보이지 않겠습니까?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들 중에는 "노동시는 민중시는 거칠 수는 있는데, ........" 하는 말들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지식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현장성과 그 현장에서 느끼는 가슴에 담은 빛나는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재대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피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내어 놓고 비판 받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몇년 뒤 우리들은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볼 것입니다. 그때는 부끄럽지 않고 시인의 작가정신에 투철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방글터
김영철시인께서 동인들과 시 '대포댁'에 대해 나눴던 대화들을 보관하길 원하여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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