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 1952년생 / 농부
초복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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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 16:02
초복
그랑께 나락이 한살 묵었응께
뿌랑지나 지대로 박았는가 몰라
작년 맹키로 보타지지는 말아야 하는디
밭고랑에는 썩을놈의 지심이
콩밭 고구마밭을 다 잡아묵고
호맹이자로가 불이 나는 고만
그나저나 병석에 누운 아부제
삥아리나 한마리 고아 드리제 하는디
아그들 숫가락이 몇인가
정월 삥아리라 추바서 다 디져 불고
몇마리 촐랑 거리는디
어짜문 쓸까나
한마리 잡아 가마솥에 물이나 한동우 붇고
귀신나무에 찹쌀 넣고 푹 고우문
아그들은 국물이라도 한사발 묵것제
참말로 여름은 왜이리 징한지
왜 이리 칭구가 안 돼는지
알다가도 모리겠고만
고래도 여름은 뜨거워야 쓰는 것이제
고래야 나락도 잘 킁께
복중에 뒈져 가는 삥아리들만
불쌍 치만 그래도 어짤 것인가
아작 중복 말복도 남았고
쌀밥 기둘리는 우리 새끼덜이나
낼 모래 또 꼬시라질 네들이나
올 여름도 징흐기만 흐다
사그라져가는 저놈에 모깃불은
왜 대추나무 곁으로만 가는것이여
오살하게 늘어져 낫으로 다 쳐부럿는디
그래도 꽃은 피고
여름은 실하게도 주랑주랑 매달려 있다
*뿌랑지~뿌리*보타지지는~ 타버리지는*지심~ 잡초
*자로 ~자루 *추바서; ~추워서*디져불고~; 죽어불고
*귀신나무~엄나무 *칭고~친구 *잘킁께 ~ 잘자라고
*창시 ~ 창자 *징흐기만 ~징그럽기만 *꼬시라질~불에 태워질
뜨거운 것조차 나락이 익을 기운이므로 참고 가야 합니다. 옛 어른들께서 초복, 중복, 말복을 나눈 것은 어쩌면 저 긴 가난, 다 타버리고 끝날줄 모르는 가난을 이기기 위한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복, 중복, 말복을 접고나면 추수할 가을이 옵니다. 힘들어도 그 고비만 넘기면 기쁨이 옵니다. 그냥 마냥 기다리기 어려우니까 문지방을 만들어 초복을 건너고, 중복, 말복을 건너면서 가을로 가을로 한발씩 다가가는 셈을 하게 하셨습니다. 소중한 닭을 잡아 먹고 뜨거운 날들을 이겨가라는 말씀에 가난을 이기는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재산밑천인 닭을 헐어서라도 뜨거운 날들을 이겨야 사람이 산다는 말씀입니다.
싸드가 설치되려하고, 최저임금은 묶이고, 노동자는 대량 해고되고, 정권의 비리를 숨기기 위해 세월호가 침몰하고, 아이들도 침몰하고..
작금의 이 가난은 전래가 없는 가난입니다. 이웃을 돌아볼 짬도 없는 가난이고, 들마다 거리마다 죽어갈 목숨만 남은 가난이고 땡볕이고 뜨거운 여름입니다. 모든게 타고 타버려 가슴도 타는 이 와중에, 그래도 자라는 나락이 잇고, 꽃이 피고, 여름이 달리는 대추나무가 마당 한 켠에 있습니다.
타들어가는 아픈 가슴을 병아리 고은 물로 삭이고 또 가자는 말씀이 오롯합니다. 그 대추나무를 담으면서 한 여름 한 문지방 넘어가는 초복, 정겨운 사투리에 담긴 옛 말씀을 오늘에 읽습니다. 마당 한 켠, 말없이 자라는 대추나무를 생각합니다.
어제 배추밭을 만들면서 말똥같은 땀을 흘렀지만 이도 한여름의 재미 아니것능가
누고는 둘이 살문서 뭐하려 저농사을 짓느냐 하지만
"니들이 이슬맞은 호박한덩이 따 보았어"
땅은 흙은 변함없이 언제나 일구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준다
농부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땅 심을 믿고 의지하며 세상을 일구어 간다
내 중년의 삶을 졸업하고 새로운 입학을 준비 하문서 올여름에 그나마 밭뙈기 라도 일구면서 위로을 받는다
성큼한 여름에 밭에는 벌써 가을 차림새 준비로 가득하다 값도 읍고 노동의 댓가도 없는 내동이 나는 숭고 하다
뿌리고 가꾸고 따서 함께 나눠 먹을 이웃이 있어서 좋다
말복 지나 나락이 세살이면 이삭이 나온다네 ( 지금은 계절도 없지만) 곧 가을이네
열열한 고국 독자 가슴에 새기고 가끔은 이곳 하늘 바라보아 주시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