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기록

2016년, 해방글터 정기모임 후기

조성웅 1 1,533

1. 지난 1월말 우포 생태촌에서 해방글터 정기모임을 가졌다. 김영철, 배순덕, 전상순, 조선남, 조성웅, 천용길 동인과 형수님들, 우창수 김은희 동지가 함께 했다. 해방글터 동인들은 만나면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다.

 

우창수.김은희 부부가 안내해 준 우포늪의 풍경은 한 달이 지나라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우창수 동지는 우포 늪에서 살고 우포 늪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우포늪은 우창수 동지를 생명의 연원에 가 닿게 한 것일까? 그는 모든 시인들은 동시를 써야 한다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때늦은 해방글터 정모 후기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해 보련다. 

 

2. 해방글터는 내게 특별한 존재다.  "혁명하는 사람, 그가 시인이다" 김남주 시인의 말씀을 따라 내가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했던 것은 결단이기도 보다는 대단히 시적인 행위였다. 내 선배들, 친구들, 후배들까지 노동해방문학실 활동을 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조정환의 <보고문학론>을 내 문학론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놈의 당파성(시와 이데올로기의 통일)이라는 것이 내 의식을 짓눌렀다. 열 편을 쓰더라도 한 편으로 요약되는 숨막히는 검열체계. 이 때 돌파구가 김남주 시인의 말씀이었다. 내가 혁명가로 산다면 나의 정서가 당파성이 될 수 있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직운동에 적응하는 과정은 혹독했다. 시 한 편 고민할 시간에 정치선동글 두 장을 쓰라는 어떤 문화의 황무지를 경험했다. 그래서 내게 시는 몰래 쓰는 사랑이었다.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던 동지들에게 몰래 주는 선물이었다. 몇 번이나 시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내 감성이 조직운동을 견디기엔 너무 섬세했고 많은 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그래서 감성 보다는 정치활동에 필요한 이성을 주로 사용하고 살았다. 하지만 시가 포기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던가? 주기적으로 시는 날 찾아왔다. 투쟁의 현장에서, 동지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난 시를 발견하곤 했다.    

 

2001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로 일하면서 쓴 몇 편의 시를 해방글터 홈페이지와 몇 몇 게시판에 올렸는데, 대구에 사는 조선남 시인이 날 꼬시러 울산에 왔다. 나를 시인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난 놀라웠다. 내가 해방글터에 가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해방글터는 내가 시인으로서의 존재감을 인정받은 곳이다. 시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위로받고 격려받은 곳, 내게 해방글터는 특별한 존재다. 

 

3. 해방글터 동인들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자 하층민이었다. 21세기 초입의 열사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을 자기 삶-투쟁으로 받아 안고 최선을 다했다. 해방글터는 카프문학을 계승한다고 용감하게 이야기도 했으나 사실 우리는 지나치게 전투적 조합주의에 갇혀 있지 않았나 되돌아 본다. 또한 우리의 시적 표현은 시가 되기 전의 분노의 나열이나 진술이 많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나의 전통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 냈고 자기 몫을 다했다.

 

4. 해방글터의 세대가 60대부터 30대에 걸쳐 있다. 해방글터 동인들의 삶이 변하고 있다. 투쟁의 현장으로부터 축출 당하기도 하고, 밀려나기도 했으며 멀어지기도 했다.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더이상 전투적인 시를 쓰거나 계급문학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자기성찰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투쟁 현장이 조직 노동운동 내부에만 있을까? 조직노동 밖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어떠한 방어수단도 없이 맨 몸으로 무자비한 자본의 수탈을 견뎌내고 있다. 해방글터의 심장은 자신의 조직노동운동의 경험을 넘어 더욱 급진적일 필요가 있으며 자신의 시작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변방이었듯 이 시대의 변방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더욱 치열해져야 한다. 자본주의와 다른 삶을 치열하게 실험해야 하고 더욱 밀어가야 한다. 난 이것이 새로운 계급문학의 토대가 되리라 믿는다. 또한 해방글터가 여전히 존재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5. 해방글터는 이러한 고민들을 담아 병신년을 공부하는 한해로 삼았다. 매달 한 편의 시를 쓰고 동인전체가 참여하는 합평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신이 써왔던 시의 습성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환갑이 넘은 영철 형은 하루에 몇 편씩 시를 올리고 동인들이 참여해서 문장을 가다듬어 주고 있고 친구 상화, 선남 형도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있다. 순덕누님도 아픈 생을 보듬어 안으면서 새롭게 시를 쓰고 있다. 합평이 마무리 되고 어느 정도 시적 분량이 채워지면 필요에 따라 웹진으로 발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동안 주춤했던 경현이도 노조 상근활동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가는지 시를 올리고 있다.

 

 다만 나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작년 5월 화천으로 올라 와 속타는 시간 속에서 엄마를 보내드리면서 아직 한 편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새로운 시가 찾아올지 모른다. 설령 시가 찾아 온다고 하더라도 "반복은 시의 죽음"이기 때문에, 내 습성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해방글터 동인들은 그랬다. 끈질기게 기다리려 줬다. 그 통증의 시간을 인정해줬다. 뭐라 하지 않고 스스로가 창작을 통해 동인들을 격려 해 준 전통이 있다. 난 이 전통 속에서 좀더 숙성될 것이다.

 

6. 올해 무엇보다 설래고 기다려지는 건 배순덕, 조선남, 박상화 시인의 엔솔로지(3인 합동시집) 시집이다. 순덕 누님과 상화에겐 첫 번째 시집이고, 선남형에게는 두 번째 시집이다. 서로 다른 3인의 개성이 어우러져 빚어낸 노래를 빨리 듣고 싶다. 시집이 나오면 출판기념회 뿐만 아니라 시노래 문화제도 기획하고 있다. 물론 그 장소는 투쟁하고 있는 현장이 될 것이다. 새로운 창작시와 시화전, 시노래문화제를 통해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날 것이다.

 

7. 올해 몇 분이 해방글터에 가입의사를 타전해오고 있다. 해방글터가 더욱 새로워질 것 같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내 대학후배도 있다고 하는데, 기대되고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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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수고했다. 변하자. 다시 바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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