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입덧은 투쟁신호처럼 왔다

해방글터 0 1,023

 

 

하청 노동자인 아내가 정리해고 당한 날

아내는 입덧을 시작했다

그랬다. 입덧은 투쟁 신호처럼 왔다

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축복 받은 투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은 출입통제 당한 아내가 첫 출근 선전전을 하는 날

자판을 두드리는 아내의 손길 따라 새벽이 왔다

난 김치볶음밥을 준비했다

김치냄새를 맞기도 싫어하던 아내는 용케도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고맙다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김치볶음밥인가

난 사랑을 알기 전에 눈물부터 배웠다

문을 열고 나가는 아내 품 속, 유인물

신념이 길을 열어갔다

아내의 환한 웃음이, 그 첫걸음이 내 투쟁 전술이었다

아내 품속 사상이 내 깃발이었다

 

다람쥐처럼 방안을 맴돌다가 까짓, 블랙리스트가 문제인가 

모자 깊게 눌러 쓰고 아내의 첫 출근투쟁 장소로 간다

새벽 공기가 비수처럼 차다

; 노동조합은 정당한 정리해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도장 찍은 고용안정합의서는 살인기계다 하청 노동자의 모가지가 합법적으로 잘려 나간다 대의원들이 사측과 거래한 맨아워 협상은 살인기계다 라인속도가 떨어질 때마다 하청 노동자들의 모가지가 합법적으로 잘려나간다 손에 피가 마르기도 전에 대의원들은 사측이 준비한 룸살롱으로 가고 조합원들조차 하루살이로 퇴근한다 투쟁은 안 되고 사측 관리자들의 룸서비스 기술만 늘어간다 이제 노동운동의 역사도 룸에서 이루어지는가? 실리파건 국민파건, 중앙파건, 현장파건 룸으로 간다 룸으로 가는 길은 노동조합 집행권력에 이르는 길이다 종파의 이해는 조합원들의 머리를 밟고 서 있다. 투쟁은 유인물 활자 속에서만 살아있다 한 달에 열 번 룸에 간 것 보다 딱 한 번 간 것이 건강함의 기준이 된다 양심 있는 현장 활동가들은 왕따 당한다 네가 얼마나 깨끗한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대, 소위원이 되고 싶어도 현장조직에 가입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동조합, 대의원들의 계산은 이미 끝났다 대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른 업체 취업 시켜 줄 테니 일 커지게 하지 마라 

 

아내는 품속에서 유인물을 꺼내 돌리고 있었다

유인물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순간

눈빛은 격려가 되고

몸짓은 연대가 된다 

유인물 한 장 버려지지 않는다

노동자는 하나다

정규직, 하청노동자 단결하여 ‘정당한’ 정리해고 박살내자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규직 조합원들과 하청 노동자들은  

아내의 첫 출근투쟁처럼 유인물을 읽고 있었다

아내는 정규직 조합원들과 하청 노동자들을 연결하는 투쟁 끈으로 살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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