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끝을 물고 이어지다

해방글터 0 1,103

 

 

현대중공업 원청 김과장은 아침부터 지랄발광이다

납기 기간 못 맞추면 다 죽는 줄 알아

선주에게 하루 수억 원 씩 물어내는 돈을 당신이 대신 낼 거야

하청 업체 이반장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얼굴이 벌개 진다

오늘 철야를 해서라도 내일까지 검사 받도록 해

이 반장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잔뜩 굳은 얼굴로 철야를 강요 한다

우리 소 같은 승훈이 형님 마다하지 못하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사람이 없는데 어쩔 수 있냐

이 반장은 야-아 이번 달 돈 좀 되겠는데

사람들 속을 뒤집어 놓는다

 

배 안 탱크 바닥, 앞이 보이지 않는 독성 강한 페인트 분진 속에서 잔업, 철야로 일하다 보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정말 살아있기나 한지 감조차 희미해진다

일자 사다리, 맥이 빠져 난간을 잡고 올라오는 손이 저절로 풀린다

이대로 두 손을 놓고 싶지만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난간에 매달려 두 손 꼭 잡고 한참을 기다린다 

자정 부근, 탱크 맨홀 뚜껑을 열고 나오면 

하, 둥그런 달이 떠 있네

둥그런 달빛 아래 둥그런 달빛처럼 둘러앉아 담배를 피운다

페인트 분진에 새까맣게 탄 똑같은 얼굴들

거울이 필요치 않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냐

담배 한 배 피우자마자 일하고 밥 한 끼 먹자마자 일하고

눈뜨자마자 다시 일하고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것이냐

시발, 완전히 사람 잡네 잡아  

 

잔잔한 파도에 실리는 둥그런 달빛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것이냐

끝을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멈추지 않는다

다른 업체로 옮겨 보면 어떨까

그러나 뭐가 달라질 것인가

언제 죽을지, 언제 짤릴지 모르는 하청 신세

노동이 따뜻한 생활도, 친절한 관계도 되지 못하고

더더구나 창조가 아니었을 때

밤새도록 울분을 술로 달래다 출근한 아침

에어 맨을 쓰다 말고 다 게워내고 난 후의 퀭한 눈빛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

 

잔잔한 파도에 실리는 둥그런 달빛

자기 몸으로 선을 그어 길을 낸다

한 번 솟구치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끝을 물고 이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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