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초봄이었다

해방글터 0 797

 

초봄이었다. 한 40대 사회주의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새 잎새가 가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넝쿨 채 뿌리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우리 생산지의 일상 속에서 복원해야 할 뿌리 깊은 계급의 기억, 87년 불법비공인 노동자 대중 파업. 그는 혁명의 기운으로 그토록 젊었을 것이다. 단결의 손들은 내란의 꿈으로 자랐고 깃발은 땅처럼 단단해졌다. 총성처럼 일어섰던 노동자 전사들 속에서, 혁명으로 살아오는 몸짓 속에서 그의 가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87년 불법비공인 노동자 대중 파업.

골리앗 정상에서 끌려 내려오던 투사들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고공은 과연 넘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을까? 그 한 때의 투사들, 이제 모두들 한 자리씩 차지했네 그들은 때깔 나고 싶어했으나 늙은 짐승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골리앗 정상에서 생성되던 희망은 10년이 지나도록 정리 해고처럼 절박했다. 고공은 과연 넘을 수 없는 두려움이었을까? 모두들 제 살길 찾아 합법 의회주의로 총총총 발걸음을 재촉할 때, 그는 생산지에서 볼세비즘의 붉은 싹을 터뜨렸다. 그는 소수였지만 아름답고 강했다.

 

초봄이었다. 한 40대 사회주의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합법 의회주의가 노동자 대중의 머리 위로 일어서고 이러저러한 좌익 패잔병들의 계모임이 있고 난 이후, 난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40대의 사회주의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사회주의 운동은 그만큼 젊었다. 새잎처럼 새파랬다. 40대의 사회주의자라! 난 사회주의 운동의 격렬하게 터지는 희망과 쉽게 꺼지지 않는 어떤 힘을 느꼈다. 폭죽이 터지듯 팍, 파바박, 팍, 팍 싹이 돋고 있었다. 생활 그 자체의 발전, 그 단결된 함성()을 나는 들을 수 있다. 이제 꿈을 꾸는 실천의 몸짓으로 그와 함께 단단하고 경쾌한, 싹이 돋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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