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비어 있는 곳을 채우며 강물은 흐른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적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낮고 낮고 낮은 곳까지
배제 되고 배제 되고 배제된 곳까지
비어 있는 곳을 향해 흘러야 한다
수탈과 착취만 집적하는 폐허의 나날이다 잘 팔리는 상품처럼 이제 공감도 우정도 연대도 민주주의도 혁명도 이 자본주의 지배질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모든 색이 바래가는 부역의 나날이다 늙고 낡고 저무는 나날이다
그러함에도 비명에 쏠리는 내 귀가 있어 다행히 숨을 쉴 수 있는 날이다 비명이 일으키는 화학적 반응을 난 길동무라 부른다 내 체온이 온통 진동한다 숨통이 트여지는 곳까지 함께 가자 공감의 주파수가 민주주의의 주파수에 감응하고 우정과 연대의 주파수가 혁명의 주파수에 서로 감응하는 과정은 계급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번암산 정상에 작열하는 태양이 딱 걸려있다
빛의 비어 있는 곳을 채우며 곧 저물녘이 올 것이다
단절하고 수렴하며 저장하는 혼종의 시간이다
한 발 앞서 다가올 캄캄한 한밤의 외투를 걸친 자여
차분히 적응하여 보름달처럼 스스로 눈 뜬 자여
별빛을 지도처럼 펼쳐 놓고 서서히 드러나는 삶의 숨통을 찾는 자여
배제된 자들이 자기 이름을 찾기 위해 서로의 손금에 손금을 포개듯이
당연하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혼종의 시간은 온다
비어있는 곳으로 흘러야 한다
땅처럼 미리 삶의 주제를 준비하고 별빛처럼 광장을 구성해야 한다
풀벌레소리처럼 함께 토론을 시작하고 벌집처럼 합의에 도달하는
진동하는 체온은
넉넉한 동적 평형에 가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