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11미터 나무
상부
가지 끝이
뿌리처럼 대류권을 향해 자라고 있다
뒤집어엎어야만 길이 되는 때가 있다
당대는
생의 대부분이 일생일대의 첫 발 떼기다
먹물처럼 번지는
그 몸짓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한 획이다
한 시대의 균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대를 선망하지 마라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바로 변화의 중심이다
저 가지 끝에 삶을 올려놓아도 불안하지 않다
바람아 불어라
격랑처럼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깊게 주름 잡힌 삶에 허공이 들어 유려한 춤사위로 펴질 것이다
활짝 펴진 춤의 오선지 위에
빛과 바람과 비와 눈과 청명의 사계가 고운 선율로 연합하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계 속에서
삶의 지평선은 지금,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2023년2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