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가난을 배반하지 않았다

조성웅 0 1,114

 

휴게시간

배관 자재 더미 위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봄볕이 스며

따뜻하고 참 고왔다

 

多情이다

 

짐승처럼 일만 하다 지쳐 쓰러져가는 날에도

몸 기대어 울고 싶은 건 多情이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도비반장이 좋았다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계절의 색감이었다

 

거칠고 위험한 플랜트 현장에서도 현빈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그는 웃을 때 가장 빛났다

 

비정규직은 대를 이어 비정규직이 됐지만

절망하지 않았고

가난을 배반하지도 않았다

 

현빈씨와 함께 현장으로 일하러 가는 길이 그렇게 좋았다

가난을 배반하지 않는 삶에 보폭을 맞추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때마침 봄볕을 품은 홍매화가 절정을 향했는데

난 그 꽃빛에 단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 아버지는 중량물을 옮기는 도비반장이고

   20대 초반의 아들 현빈씨는 나와 함께 일하는 배관조공이다

 

 공장담벼락 한 편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하지만

 봄볕처럼 따뜻한 벽화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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