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휴게시간
배관 자재 더미 위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봄볕이 스며
따뜻하고 참 고왔다
多情이다
짐승처럼 일만 하다 지쳐 쓰러져가는 날에도
몸 기대어 울고 싶은 건 多情이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도비반장이 좋았다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계절의 색감이었다
거칠고 위험한 플랜트 현장에서도 현빈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그는 웃을 때 가장 빛났다
비정규직은 대를 이어 비정규직이 됐지만
절망하지 않았고
가난을 배반하지도 않았다
현빈씨와 함께 현장으로 일하러 가는 길이 그렇게 좋았다
가난을 배반하지 않는 삶에 보폭을 맞추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때마침 봄볕을 품은 홍매화가 절정을 향했는데
난 그 꽃빛에 단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 아버지는 중량물을 옮기는 도비반장이고
20대 초반의 아들 현빈씨는 나와 함께 일하는 배관조공이다
공장담벼락 한 편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하지만
봄볕처럼 따뜻한 벽화를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