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김장

조성웅 0 941

장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오빠 집에서 김장을 얻어먹던 아내가

올해는 김장을 해야겠다고 봄비가 스치듯 한 번,

사뭇 진지해진 첫 눈처럼 또 한 번 이야기했습니다

 

"나에게 김장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글쎄……."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왜 내가 김장을 안 한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정말 몰라?"

"……."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이번 김장은 엄마 없이 비로소 내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가 내 곁에 없어 정말 힘들다"

 

아내가 엉엉 울기 시작했는데요

엉엉 우는 것만이 가장 투명한 그리움일 때가 있어요

그녀의 눈빛이 온통 맑은 물기로 그득해지는데

좀 더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어요

사실 어떤 다짐이라는 것도 두툼해진 변명에 가깝거든요

우는 아내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 발을 다정하게 주물러 주는 거였어요.

아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게 원하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녀 울음의 감각은 오직 온도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오늘은 아내가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아내와 소소한 일상까지 나누고 사는 덕종언니, 세진언니, 동생 선미, 이웃마을 사는 병도까지 와서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아내가 엄마의 부재를 딛고 독립한,

엄마 없이 비로소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첫날입니다

 

지는 꽃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녀 곁을 온기로 채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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