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이성호 전영수 동지 고공농성 100일을 격려하다
직접 행동하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쫓겨난 거리, 그 낯선 바닥에서 다른 삶은 시작됐다
소모품처럼 버려졌던 그대 맨 몸이
하청노조 푸른 깃발로 직립할 때
인간의 존엄도 함께 태어났다
이 죽음의 공장에서
섣불리 광장의 시간을 고대하지 않았다
부딪히고 깨어지며 나아가는 것이 죽음을 견디는 방법이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었다
“구조조정 중단하라”, “블랙리스트 철폐하라”, “하청노조 인정하라”
죽도록 일만 하다 나이 들고
죽도록 일만 하다 죽어가야 할 시간 속에서
생을 다해 사람을 꿈꾸었다
가장 아팠던 것도 사람이었고
가장 행복했던 때도 사람이었다
아프고 서러운 그대는 자기 몸의 지층에 참 많은 울음보를 저장하고 있다
참다 참다 못해 토해내는 울음만큼이나 뛰어난 치유력이 또 있을까
오래 운 그대 눈빛엔 자신을 표현할 물기 오른 언어가 산란되고 있었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사람이다
다 받아들이고 다 견뎌낸 바닥이었다
한 번도 높이를 가져 본 적이 없었던 이성호, 전영수 동지는
기어이 허공에 뿌리를 내렸다
아무도 발 딛지 않은 곳조차 그들에겐 방법을 찾는 몸짓이었다
아주 특별하게도
허공은 기울어져 있지 않아 좋았다
수평을 이루는데 한 생을 내어주고 싶었다
비록 이윤을 중단시키지는 못했어도
위계와 차별을 갖지 않는 바닥이었던 그들이
마침내 도달한 곳은
36.5도의 체온이 느껴지는 평평한 인간의 대지였다
모두 함께 살고 싶었던 곳, 맨 발로 걸어보라
맨 발에서 느껴지는 삶의 온도 속에서 생의 절정은 온다
서로를 향해 웃는 것이 그들의 강령이었던
이성호 전영수 동지는
감히 경쟁이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였다
2017년7월18일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고 낭송하는데, 목소리가 올라갈 때 기침이 나고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19일이 고공농성 100일이 되는 날이고 문화제가 기획되고 있다
마지막 퇴고 과정을 거쳐 좀더 시적 완결성을 갖도록 문장을 다듬어 낭송 연습도 해서 담주엔 좀더 잘 낭송할 생각이다
더욱 마음이 아팠던 건 고공농성장 밑도 아니고, 그것도 멀리 떨어져 고공의 두 동지를 등지고 무대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하청노조가 이를 허용했다는 것이다. 고공의 동지를 등지다니, 나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청노조는 더이상 하나의 "사건"이 되지 못했고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하청노조 건설에 함께 참여했지만 이제는 하청노조를 떠난 내가 하청노조를 바라보는 감정은 참 복잡한 것이었다.
금속 울산지부 결의대회가 마치고 연대 온 동지들이 모두 돌아가는 시간, 저녁이 올 무렵, 난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하청노조 조합원들과 고공의 전영수 이성호 동지를 위해 시를 낭송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오직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를 썼고 그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