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백만 촛불 마이너

조성웅 8 1,639

- 노동악법 철폐, 노동삼권 쟁취, 27일간의 광화문 고공삭발단식농성을 기억하며

 

사람 추린다는 소리에 휴무도 없이 출근한 공장 담벼락 안엔 어떤 꽃소식도 없었다 사람만이 결정적인 봄이다, 라고 안간힘으로 외쳐보지만 입만 열면 영구퇴출입에 달고 사는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 아가리를 박살내지도 못했다 촛불은 공장 밖에서만 켜졌다

 

하청업체 안전팀장 새끼도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 탄핵을 고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명령을 하고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봉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계획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내게 촛불은 혁명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청의 재하청인 나에게 다가온 삶은 매일 매일이 폭력적이었고 오늘도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 나는 외친다 차별은 폭력이다 위계는 폭력이다 억압은 폭력이다 명령은 폭력이다 조합주의는 폭력이다 가부장제는 폭력이다 민족주의는 폭력이다 개량주의는 폭력이다 관료주의는 폭력이다 군대는 폭력이다 의회제는 폭력이다

촛불은 흐르고 흘러서 흐름 자체가 되는 것, 머물러 무대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난 촛불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 촛불이 멈춘 곳, 화려한 조명의 대형스크린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대형스피커로 꾸며진 무대가 내 눈엔 마치 명박산성 같았다 무대 앞에서 나의 관심사였던 그대의 표정을 결정적으로 잃어 버렸고 유독 주목하고 싶었던 그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목소리를 잃고 그대를 데울 국도 밥도 나오지 않는 무대를 오래도록 바라봐야 했다 고착당한 것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물론 촛불은 하나의 구호가 아니고 여럿의 삶이었다 노빠도, 문빠도, 어용도, 노사협조주의자도, 조합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김일성주의자도, 가부장주의자도, 개량주의자도, 관료주의자도, 중도주의자도, 여성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자율주의자도, 코뮤니스트도 함께 참여하고 함께 행진했다 촛불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계급투쟁의 소용돌이었다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인 정치적 경향들이 함께 지배질서를 잠시 정지시키는 압도적인 다수의 힘을 이뤄냈지만 국가 앞에서 갑자기 온순해졌다. 국가에 대한 분노가 이토록 순종적일수도 있다니, 내겐 참 기형적으로 보였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어떤 계획도,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로 죽도록 일만 하다 죽어갈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노사협조주의자는 죽어라고 자본가계급에게 협력만을 할 것이고 조합주의자는 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계급을 배반할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성폭력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을 것이고 개량주의자들은 오늘도 투쟁 현장에 나타나서 선거가 다가오니 투쟁을 접자고 압력을 넣고 민주노총을 깰 거냐고 협박하면서 계급화해의 정책들을 생산해낼 것이다 촛불의 흐름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민족주의자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비판을 진압하며 자신의 명령을 완성할 것이다. 또한 촛불이 무대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와 그대는 표정을 잃고 목소리도 잃게 될 것이며 나를 대신 해 내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의 목소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것이다

 

거리로 내쫒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촛불이 됐고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투쟁을 외쳤지만 백만 촛불 내내 발언권조차 얻지 못했다 촛불, 그 한 뼘의 빛조차 서럽고 외로웠지만 죽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했던 투명한 맨 몸들은 자립적이었다 촛불은 민주주의를 위해 계급투쟁을 한사코 배제하려 했지만 자립적인 몸짓들은 선거를 넘어 (계급)투쟁으로나아갔다 의회제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했다 투명한 맨 몸의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를 우선적으로 폐지했다 자립적인 투명한 맨 몸의 연대, 협력은 미생물과 같아서 사유하는 순간 놀랍도록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투명한 맨 몸이 강해질 수 있는 건 서로 밀착되어 서로를 느끼고 그 몸의 언어를 경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비우면서 그곳에 배제하지 않는 힘, 평평하고 너른 마당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권리를 위임하거나 대의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행동으로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투명한 맨 몸의 연대에 온통 마음이 쏠린 이유였다 나와 그대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였다 모든 폭력에 맞선 가장 뛰어난 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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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울산저널 투쟁 관련 글을 쓰느라 2월초 중순까지 에너지 집중하다 겨우 오늘 시 한 편 썼다. 기간 메모했던 것 중심으로 글을 구성해봤는데, 아직 거칠다. 상화야 보고 조언 좀 해주라.
박상화
촛불은 무엇인가에 대해 모두들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유사이래 처음있는 대규모 동력이니 그런것같다.
나도 이번 촛불의 처음에 대해 회의하였다. 광우병촛불때처럼 흐지부지되고 결국 깨지는 놈은 정해져있는 게 아닐까, 그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선 더 강도높은 방법과 요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답답했다. 경찰버스에 꽃이라니.

그런데 촛불이 유기물이었다. 사실 처음 촛불을 시작하던 작년 11월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 동력에 촛불이 있었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박근혜정부는 촛불의 흐름을 유효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기레기도 개검도 경찰도 그전처럼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게이트가 터졌고, 특검에 박수를 쳐주며, 이젠 누구나 버젓하게 탄핵을 요구한다. 그것은 촛불만의 힘은 아니다. 4대강과 국정교과서부터, 세월호에서, 밀양에서, 구럼비에서, 성주에서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까지, 반대하고 싸워온, 정말 치열하게 싸워온 그 힘들이 집중된 것이다. 촛불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던 불만이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로운 광장에서,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광장이었기에, 아이도 데리고 나오고, 노인들도 나와서 입장을 표명하였다. 침묵이 깨진 것이다. 알다시피, 속에든 생각과 그것이 행동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잇다.

그전처럼 화염병과 짱돌과 스틱을 들었으면 청와대로 쳐들어가 무력으로 내쫒을수 잇었을까? 그정도로 준비된 힘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 사람들이 촛불이후를 고민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준비없이 일시적인 무력이라면 고부군수 악질 조병갑을 몰아내는 해방구의 희열은 잠시 잇었을지 몰라도, 결국 준비되지 않았기에 모두 잡혀서 학살당한 동학군의 전철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촛불이후를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면, 어떤 조직도 준비되지 않았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아무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유기적 흐름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정부가 구성될 거라고 보는 건 천만의 발상이다. 당장 금속노조가 자동차판매노조를 하도급이란 이유로 가입시켜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는 금속노조나 큰 노조들은 지금 철밥통 속에서 요지부동이다. 민주당과 적당히 함께 흘러가는 길을 택하고 있다. 그들의 변혁에 대한 결의는 박사모보다도 부족해 보인다. 대조직이니 그 나름의 번잡함과 또 여럿으로 쪼개진 정파와 그런 문제들이 산적해 잇겠지만, 내 말의 요지는 그들이 이 시기를 뭉쳐야할 시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노총은 지금 의욕도 힘도 없다. 민주당은 이미 정권을 잡은 것처럼 행동하고 "선의"같은 단어를 뱉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방식으로 정권을 바꿔도 하청의 재하청들이나 비정규들에게 갈 떡은 없는 상황이다. 촛불은 또다시 가난한 바닥이 아니라, 불만스런 지식인의 혁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바뀐것이 양에 차지 않더라도, 바뀐건 바뀐거다. 그것이 제도의 안에서 그런 흐름을 만들었다 해도 그전에는 그것도 어려웟던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약간의 광장이 열린 것이다. 언제 어떤식으로 닫힐지 모르는 광장이라서, 많은 이들이 이 힘의 이후에 대해 고민한다. 각자의 이해에 따라 고민한다. 어쨋건 꽃병이 없다고 해서 무의미한 건 아니라는 건데, 지금 각자의 이해속은 바쁘다. 지원이 필요한 비정규, 하청, 빈민, 장애인, 농민같은 바닥들은 그 자체로 동력을 얻지 못한다면, 지금 버려진거나 마찬가지다. 잔치판에서 지금 떡 쥐기 바쁜 놈들이 담밖을 생각하겠는가.

그럼 어쩌라는 건가.

열린 광장이 좋은건 이도저도 아니던 마음들이 열렸다는 거다. 가사만 돌보던 마음도 광장으로 움직인다는 거다. 그 열린마음에게 다가가야 한다. 여기 이런 사람도 있음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말하자면 각자의 조직이 각자의 지평을 보다 넓힐 기회가 열린광장이라는 것이고, 촛불이라는 것이다. 실학사상은 죽은 책속에 안주하지 말고 실제로 써먹을 학문을 하자는 것이고, 지금 열린광장에서 자신의 실익을, 지평을 잘 넓혀가고 있는 건 온라인에선 페미니즘이고, 오프에선 밥연대같은 활동들이다. 물론 내게 보이는 것만이 그렇다.

여전히 기존의 정파나 금속노조같은 조직들은 침묵하고 그럼으로 퇴보하고 있으며, 광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촛불을 좋게 보는건, 지평이 넓어질 가능성이 열리는 것, 그 안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인연들이 새로운 힘으로 작동해 나갈 것이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아직 정의를 버리지 않고 잇다는 것, 불의가 자본가들의 것이라는 것이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다. 그 전에 민주노총이나 제 단체의 활동으로 이만큼의 양지를 얻어내려면 무척 오래 걸렸을 일이 몇달만에 당겨져왓다. 그게 촛불의 힘이고, 광장에서 움직이는 행동의 힘이다.

그래서, 내가 볼때, 촛불에 대한 시를 쓴다면, 이제 디테일에 주목하는 시를 써야한다고 본다. 광장에 섞인 수많은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네 동지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하청들, 빈민들, 비정규직들, 그 수없이 많은 마이너들에게 외쳐야 한다. 이리 모이라고하던, 너네끼리 모이라고 하던, 마이너들끼리 뭉치고 외연을 넓히는 수 밖에 없다. 자력갱생이다. 광장의 헤게모니는 하나가 아니다. 광장은 파이다. 열린광장은 모두에게 기회이기도 하고, 모두가 동력이기도 하다.

--------- 이제 시에 대해서 말하자면,

물리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게 불만이다.
우리의 일상이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밀착되자. 뭉치자.

이렇게 가는데, 논지의 흐름이 애매하다. 구체적으로 어쩌자는 게 없다.
촛불정국에서 마이너의 입장에 대한 고발, 마이너가 겪는 폭력에 대한 주장은 선명한데,
그럼 마이너들이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게 빠진 느낌이다. 지금 그 부분이 모두의 가장 큰 고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촛불정국이 이제 탄핵을 앞두고 막바지로 보인다. 이미 수차례 비폭력으로 백만, 이백만의 집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흐름을 바꾸긴 어렵다. 대선정국으로 들어가면 마이너들은 또 깨진다. 마이너들이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연단을 비판하기보다 마이너에 주목하게 하는 시가 필요하지 싶다. 그래서 1,2,3,4연을 좀 더 줄이고 5,6,7연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8.9연은 반전의 고민이 필요하다.

바쁜 와중에 쓴 글에 내 생각을 보태보았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도움이 안되는 말도 있을 것이다.

때론 무기를 들고, 때론 농사를 함께 짓는 것이 혁명이 아니었던가. 지금 시대의 혁명은 무기만으론 안되는 것이다. 무기를 구할 수도 없다. 또한 그래서도 안된다. 무력은  또 다른 독재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체제내에서 바꾸는 것만이 방법일 수도 없다. 금속노조도 바뀌었고, 민주노총도 바뀔 것이다. 원하는 혁명이 도대체 뭔지도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정도전의 방법을 도입하여 무상으로 땅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행복해 질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분명한건 지금처럼 울분만 할 것이아니라 지평을 조금씩이라도 넓혀나가는 것만이 마이너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온라인의 영역은 사람들의 생각을 엄청나게 바꾸고 있다. 어른은 아재가 되어 가고 있다. 가부장은 녹아없어지고 잇다. 그런 것들은 실질적으로 삶을 바꾼다. 그러니 바꾸고 바꾸어 나갈 폭력과 권력들은 주변에만도 얼마나 많은가. 하청의 하청에게도 설움을 당하고 잇는 게 현실이다. 페미니스트들이 화염병보다 더 강력한 미러링이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인식을 바꾸는 싸움을 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저들은 진짜 그들이 바라는 혁명을 위해 싸우고 잇구나 싶었다.

------ 이 시가 생활에 기반한 것이라기 보다, 정치적인 흐름에 기반한 것이어서 내 말도 관념으로 흐른다. 그리고 생각은 다를 수 있을 것이지만, 네 생각의 길로 잘 갔으면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권력에 대한 고발과 대안이 네 고민속에서 더 풍부해 지기를 바라면서, 거칠고 즉자적인 글을 줄인다. 내 글에 다른 생각이 있다면 나도 듣고 싶다. 얘기를 나누면서 대안을 만들어 보자.
박상화
내 생각을 주욱 나열해 놓고 다시 읽어보니 니말이나 내말이나 비슷하다 싶다. 다시 정리해 보면,
1.2.3.4연은 촛불집회에서 마이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게 실망스러웠다. 내 이익과는 안 맞는다.
5.6.7연은 구체적 분석이다. 그런데 마지막 "비폭력 평화집회는 폭력에 대한 완전한 굴종이 될 것이다"이 문장이 걸린다.
8.9연은 앞의 전반부, 중반부와 괴리된 느낌이다. 8연은 그런 폭력이 왜 마이너에게 중요한가를 드러내야하고, 9연은 사실상 "백만촛불이 중요한게 아니고, 마이너들이 일상에서 생각을 바꿔 폭력에 저항하고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핵심요지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무엇을 그리해야하는가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두가지 주장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요지가 한눈에 안 들어 오는 것 같다.
하나는, 비폭력집회는 폭력에 대한 굴종이다라는 시각.
다른 하나는, 백만 촛불의 화려함만을 보지말고 우리(마이너들) 스스로 사고와 생활을 바꿔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시각.

예를 들어, 제목을 "백만촛불안의 마이너"같은 걸로 바꾸고, 부제를 없애고(부제가 시를 읽는 동안 자꾸 뭘 어쩌자는 거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비폭력 평화집회는 폭력에 대한 완전한 굴종이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삭제하면, 두번째 주장만 남게 되므로 전체적으로 주장의 흐름이 매끈해진다. 
아니면, (백만촛불이 그렇지만)이라는 요지를 전반부에 깔고, (우리는 이래야한다)는 걸 후반부에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시가 길고, 소재 자체가 워낙 복잡한 것들이 많이 섞인 백만촛불이기 때문에, 주장의 요지를 얼른 받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다. 그 점을 주목하고 정리하면 깔끔해질듯 싶다. 주장하는 바가 평화집회에 대한 불만인가, 아니면 백만촛불에서도 소외된 마이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인가를 명확히하고 정리하면 좋겠다.
조성웅
긴 글 고맙다 아직 내가 무엇을 드러내고 말하고자 하는지 촛점이 잡히지 않은 것이지.

오늘 몸이 안 좋아 퇴근해서 아내에게 80여방 침 맞고, 또 울산저널 관련해서 기고한다는 동지에게 전화가 와서 한 시간 가까이 통화하고 나니, 또 잠이 온다. 오늘은 자고, 내일 퇴근해서 나의 고민들 기록해볼께.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이 시작메모가 서너편의 시로 분화될 수도 있고, 촛점이 명확하게 잡히면 아주 압축해 짧아 질 수도 있겠지 ㅎ
박상화
천천히 하자. 문구문구는 너답게 선명하고, 아름답다. 잘 전달된다. 이 시는 어떤 문구를 바꿀필요는 없어보인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 요지, 누가 어떻게 할것인가를 잘 정리하면 한 시기를 정리한 큰 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와 주장의 경계에서, 지루한 논지와 논거를 들어야 하는 주장글보다 시가 얼마나 더 쉽고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잇는지를 짧은 시로써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임팩트있는 퇴고를 기대한다.
조성웅
27일째 굶고 있는 내 친구 혜진이가 생각났다. 내일 내려온다고 하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 때 생각난 것이 2월달 초안 써 놓고 처박아 놓았던 이 시가 생각났다. 글터 홈피에 올린 초안을 급하게 좀 다듬어 혜진이 보라고 올려줬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가 완성되면 낭송해주고 싶다고 했다.

흥렬아 너의 기대되로 임팩트 있는 퇴고가 거의 마무리됐고 올해 쓴 두 번째 시다. 지난 한 달, 내가 분노에 고립됨으로써 널 돌보지도 못했다. 미안타. 투잡, 쓰리잡 변변찮은 네 몸이 걱정이다. 나의 시로 너의 안부를 묻는다.
조성웅
올해 쓴 두 번째 시, 웹진 문화-다 7월호에 기고했다. 정치의 직접성이 드러나는 시를 꾸준하게 써 볼  생각이다. 그런데 세 번째 시는 왜 이다지도 더디단 말이냐 ㅠㅠㅠㅠ
조성웅
7월호가 아니라 8월호에 실린다고 연락이 왔네.

조성웅 시인, 안녕하세요. 이성혁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게 있는데 깜빡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시는 웹진 문화다에 8월 1일 실립니다. 
100만 촛불 마이너를 먼저 15일 동안 올리고
그 다음 시를 16일부터 보름간 올릴 것입니다. 
전에 7월에 실린다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 제 착오였습니다. 
빨리 말했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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