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전면파업 중인 플랜트 울산지부 지침에 따라
에쓰오일 동문 사수투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덕종 언니가 서울 촛불 가고 싶다는데 주말 일정 어때”
“노동조합에 파업 일정 알아보고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아내의 전화를 끊고 곁에 있던 고참조합원에게
“동네 언니들이 서울 촛불 가고 싶다”고 문성 엄마한테서 전화왔어요
“어 그래 울 마눌님도 촛불 가보고 싶다고 하던데”
며칠 전 입동이 지났으나 내 마음은 이미 경칩 부근에 불시착하고 있었다
내 가슴에 번진 그녀들의 욕구는 인간존엄의 뿌리에서 막 밀고 올라온 새순 같았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임금인상을 위한 무기한 전면파업 보다 더 급진적이라 생각했다
노동조합 활동가였던 남편들 서울 전국노동자대회 올려 보내고
아이들 밥 먹여 놓고
그렇게 함께 모여 술 한 잔 하면서
전태일 열사의 기일을 기억하던 아내도, 덕종 언니도
10년 만에
전국노동자대회, 서울 촛불 시위에 가고 싶어 했다
다 받아들였으나 절망하지 않았고
돌보고 가꾸었으나 체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방적이지 않았고 대화가 우선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끈기 있게 동의를 이끌어 냈고
존중과 지지 속에서 서울 백만 촛불행은 시작됐다
그녀들의 노선은 인간 존엄에 가장 가까웠고
난 삶은 이 노선을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조용히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그녀들의 곁에서 그 욕구가 꽃피도록 조력하는 일이다
아이들 밥 먹이듯이
그녀는 백만 촛불 시위에 간다
2017년1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