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해방글터 네 번째 동인지 원고

조성웅 1 1,211

<시> 젖은 몸
-박남규 동지에게

 

퇴근 무렵, 말조차 꺼내기 힘든 저 지친 몸엔
어떤 형상을 갖지 못한 쉰내 나는 언어들이 묻어 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설운 기록들은 확실히 짰지만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아름다운 무늬가 느껴졌다   

 

토닥
   토닥
       토닥

 

점자처럼 내 손금에 와 닿은 언어들은 
폭동 보다 강했다

 

<시> 위험에 익숙해져 갔다 

 

끝내
그는 H빔, 그 위태위태한 난간에 모로 누워 버렸다
그의 등 뒤에는 10M 허공이 펼쳐졌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세가 그래도 용접을 하기엔 최선의 자세
그는 허공조차 안전지지대로 사용하는 법을 안다 

 

몇 차례의 죽음을 넘어
오늘 하루분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까지 

오로지
위험에 익숙해져 갔지만

그는 이 야만의 세계
삶의 안전을 위한 최고의 역능을 숙련했는지도 모른다 
 
난 H빔 위태위태한 난간에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이
목숨을 살리는 방법 같고 삶의 안전을 위한 끈질긴 질문 같고
이판사판 한 번 붙어 보자는 고공농성 같았다
허공은 모로 누운 그의 모습을 닮아 수평을 이루었다  

 

<시> 생의 바닥 

 

출근길 가는 비 온다

생의 바닥은 왜 이리 미끄럽고 또한 위험한지  

 

천막을 치고
용접기 전원버튼을 올리는 그의 젖은 어깨가 위험해보였다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이 악물었는데 
불행에 젖지 않는 일은 더욱 우연에 가까웠다

 

용접불꽃은 생과사의 경계에서 타오르고
가는 비는 이 불꽃의 공간을 가만히 열어준다

 

절망도 희망도 너무 낡은 것이어서
이미 축축해진 몸과 마음에 한기 같은 독한 마음이 들어찼다
오래도록 젖지 않았다
 
<시> 바닥을 견디는 힘

 

점심시간 컨테이너도 비좁아 
작업장 한 편 그늘에 종이 박스 깔고 안전화를 벗는다

 

땀에 절어 축축해진 내 두발을 용케도 견뎠구나.
애썼다
나의 안전화여

 

밥 먹듯이 해고되어도 날 품었고
밥 먹듯이 골병드는 날에도 무너지지 않게 날 떠받쳐 주었다

 

묵묵하게 내 젖은 몸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끈덕지게 내 젖은 몸을 이해하려 했다

 

내 고단한 생에 딱 들어맞게 밀착된 너의 도정!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너의 한걸음
너의 두걸음

 

바닥을 견디는 힘이었다


<시> 아주 평평한 마음

 

외국계 화학공장에 파견나간 날
정규직 직원 식당에서 눈칫밥 먹다가
오늘은 장생포 횟집에 가 회덮밥을 먹는다

 

설운 비정규직
설운 비정규직끼리
밥 먹는 게
속편하다

 

저 속편한 웃음은 대부분 눈물로 빚어진 것이다

 

아주 평평해진 마음들은 공감에 최적화된 삶의 온도다
떼 지어 일어서는 힘은 다 이곳에서 자란다 

 

<시> 짐승처럼 앓다 

 

오늘도 잔업이다
잔업을 해도 물량을 처리하지 못해 철야까지 해야 했다

 

온 몸이 아프다
견디지 못할 무렵이면 짐승처럼 앓기도 하는 것이다

 

공장의 불빛은 노동자들의 고열로 달아올랐다
인정사정없다

 

<시>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폭염이 점령한 오전 휴게시간

용접하는 노동자도

보온하는 노동자도

전기하는 노동자도

배관하는 노동자도

비계 하는 노동자도

지금

막 샤워하고 나온 사람들 같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다 견뎌 낸 시간들이 다른 세계의 둥근 씨앗으로 맺혀 있다

  

싹틔우는 것은 온 몸이 진통이다

그렇게 통증 깊은 젖은 몸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가 가장 투명하다

 

 

그래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싹틔우고 꽃피우는데 오로지 쓰일

저 생의 미래를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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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엄마 시집 이후에 쓴  시 중, 어디에 기고하지 않은 시, 새롭게 써 보고 싶었던 노동시를 중심으로 골랐어요.
아직 최종은 아니고, 이후에 쓰여지는 시 중에서 더 마음에 드는 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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