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학교(초안)

조성웅 3 1,211

 

"인간답게 살아보자"
2005년 에스케이를 상대로 죽창을 들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고참조합원은 말이 없다

2016년 플랜트 울산지부 무기한 전면파업 2일차
새벽 5시 에쓰오일 출하장 집결지침은 당연히 대체인력저지 투쟁을 위한 것이었다
말이 없던 고참조합원은 단 한 놈도 공장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투쟁했다
업무방해 고소가 부담스러웠던 노동조합 한 간부가 대체인력저지 투쟁을 무장해제시키려 할 때
말이 없던 고참조합원은 가장 단호하게 항의했다

투쟁조끼를 입었다고 해서 다들 친절함을 배우지는 못한다   
관리자에게 일이 너무 박세다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안전상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은 못하고
오히려 같은 작업자에게 짜증내고 화를 내듯이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파업 대오 속에서 대낮부터 술을 먹고 현장토론이 시작되자
자기불만을 욕으로 표현할 뿐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힘이 없다
말없이 듣고 있던 고참조합원은 필요할 때 한마디 했으나
구체적이고 결정적이었다
자기밥그릇만 챙기려하고 동요했던 조합원들은 부끄러워해야 했다

정문 사수투쟁은 끈질겼다
점심 무렵 먹구름은 비바람을 몰고 왔다
젊은 조합원들이 차에 들어가 좀 쉬라고 해도
말이 없던 고참조합원은 머프를 눈 밑까지 올리고
바람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기 몫의 싸움을 사수하려 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투쟁에는 단호했고
그는 말이 없었으나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있었고
그는 말이 없었으나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았다

난 노동조합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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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어제 올렸던 페북 메모글을 거칠게 시로 배치 해 봤음.
완성되면 오랜만에 내 맘에 드는 시가 될 것 같은 좋은 예감 ㅎ
김영철
일이너무 박세다고  일이 너무 빡세다고  가 아닐까
박상화
음, 느낌이 좋다. 좀 수정해야 되겠는데, 잘 정리하면 수작이 될 것 같다.

나도 이번 민중총궐기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이럴 때가 원로의, 고참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페북을 통해 이런저런 내역들을 보면, 좋은 말은 많은데 모두가 개인적이다. 지헤와 경험이 모이면 좋은데, 모두 쌀알처럼 흩어져만 있다. 그래서 어제 만희형님 페북에다 이참에 어버이연합에 대응하는 민노총 원로들의 모임도 하나 만들어 보시면 어떻겠느냐고 농담을 띄웠는데, 원로들이 평생 민노총 하나 만들려고 혼신을 다해 온 사람들임에도, 그놈의 파벌로 다들 서로 싸우다 지쳐 등을 돌린 상황이 많은 줄 알지만, 그래도 그들의 열정과 경험과 지혜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런식으로 하나씩 체계를 잡아가는 기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 너무 패가르기만 하고, 같은 길을 가면서도 반동보다 더 미워하고 그런 것들은 고쳐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이건 결국 자본주의를 미워하면서, 자본주의를 닮아가는 꼴이야.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죽여도 좋다는 생각이지. 이 길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면서, 나만 따르라고 하는 건 파시즘이지. 아무튼 운동권이 그런 병폐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여유가 없어서 그런거야. 당장 숨쉬기도 힘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온갖 핍박을 받으며 모든 촉각을 세우고 내린 그 결정이 아니면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는 거야. 자기 경험에서만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예의가 필요한데, 예의의 앞에는 여유가 먼저 필요해. 처절한 상황에선 예의를 가리기가 어렵거든. 아무튼, 이런 고참조합원의 모범을 부각시키는 교훈담도 필요하고, 신입조합원의 패기를 부각시키는 활기도 필요한게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시가 핍박앞에 울기만 할 게 아니라, 자본의 시각과 분리되어 교훈과 활기가 어우러져 자체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현장에서 보고 쓰는 시들이 땀을 발견하고, 틈을 만들고, 경험을 존중하고, 활기까지 이뤄가면서 새로운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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