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곁을 내어주면 (수정)

조성웅 8 1,956

비오는 오후 휴게시간

옹기종기

곁을 내어주면

땀내 나는 젖은 몸이

이 다정함을 먼저 안다

살아볼만한 최적의 온도가 느껴졌다

곁을 내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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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살아볼 만하다는 건 이 무렵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건 이 무렵이었다.

원 뜻이 이게 아니었을까 싶고, 이 문장을 왜 저렇게 틀었을까가 의문이네. 아니면 내가 잘못 읽은건가?
조성웅
메모했던 하나의 소품 같은 상황을 시로 옮겨 놓은 것인데, 핵심은 '다정함'인데 이 다정함을 삶으로 전환하고 하나의 동력으로 표현하기에는 마직 멀었지. '살아볼만한 무렵이었다'도 약해 ㅠ 일단 여기까지 하고 좀더 지켜봐야지 ㅎ
조성웅
살아볼만한 무렵이었다->이번 생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상화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근데 '살아볼 만 하다'쪽으로 접근하는게 더 나은 거 같은데. 곁에서 느낀 살아볼 만하다는 느낌이 자연스럽지. 곁에서 다른생이 태어나는 건 좀 멀다는 느낌이다. 살아볼만 하다를 어떻게 살려봐. ^^
조성웅
다정, 살아볼만한 최적의 온도 ㅎ
해방글터
아니야, 아니야.. 땀내나는 곁이 다정은 아니야.. 초안이 더 좋아. 비오는 공장 담벼락 처마 밑에서 땀내나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밀조밀 주저앉았을 때, 그 잠깐의 휴식에서 느껴지는 꿀같은 여유, 같은 작업을 하는 동료들의 어깨와 처마밑의 해방구같은 무장해제의 여유로부터 느껴지는 살아볼만하다는 그 느낌을 나는 알겠는데, 다른 생이나 다정은 아닌 것 같아. 다른 생처럼 느껴지는 것도,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도 무장을 해제한 여유에서, 이 잠깐 만큼은 누구도 터치못하는 해방의 시간이라는 여유에서 나오는 거지. 게다가 "똑같이" "못난 놈들끼리" 있으니까, 세상 편한거지.

살아볼 만하다는 건 그 전엔 못살겠다였던 거쟎아. 그걸 바꾼 계기가 그 체온, 온기, 여유, 동류감, 그런 것들로부터의 편안함이지. 이 시간을 지속시키고 싶다. 이런 시간을 지속시켜야 할 권리가 있다. 이 편안함은 힘든 노동이 주는 기쁨인데, 긴장할 필요없는 무장해제의 공간과 시간, 거기다  전부 똑같이 생긴 아군뿐이니까 좋은 거지. 거기서 찰나에 깨달은 거야. 살아볼 만 하다! 함께 살아야 겠다! 뭔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사람으로부터 씻겨져 나가는 순간을 경험한 건데, 누구도 어떤 멋있는 말을 한게 아니고, 그냥 그 분위기, 그 시간에서 혼자 문득 느껴진 그것이지. 그러니까 누가 다정하게 해준게 아니고, 누가 새로운 생을 준게 아니고, 혼자 문득 느낀거야. 그 인간 동류끼리의 다정함과 행복감을.

그게 틈이지. 칼같이 짜여진 자본의 스케쥴에 난 잠깐의 틈. 그 발견을 이렇게 쓰는데, 그게 생이거나 다정이게 되면 단어가 힘을 못 받는 거지. ...그렇지 않을까? ^^
조성웅
정확한 지적이다 ㅎ
다정과 다정함의 차이도 그렇고
이 공간은 곁을 내줌으로써 생겨난 하나의 틈이지 ㅎ
제목은 다시 곁을 내어주면으로 바꾸거나 더 고민해보고
"최적의 온도"는 살리고
조성웅
다시 제목을 바꾸고, 마지막 행에 "곁을 내어주면"을 강조하고...아직 2% 부족한 것 같은데...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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