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조성웅 3 1,709

폭염이 점령한 오전 휴게시간

용접하는 노동자도

보온하는 노동자도

전기하는 노동자도

배관하는 노동자도

비계 하는 노동자도

지금

막 샤워하고 나온 사람들 같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다 견뎌 낸 시간들이 다른 세계의 둥근 씨앗으로 맺혀 있다

  

싹틔우는 것은 온 몸이 진통이다

그렇게 통증 깊은 젖은 몸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가 가장 투명하다

 

그래

폭우처럼 쏟아지는 땀은 낡지 않는다

 

싹틔우고 꽃피우는데 오로지 쓰일

저 생의 미래를

난 믿는다

201693/201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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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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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이틀 비 맞고 일했다
 생의 바닥은 왜 이리 미끄럽고 또한 위험한지 ㅠ

불행에 젖지 않는 일은 갈수록 우연에 가깝다
 오늘도 안전사고가 났으나 천만 다행으로 다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만큼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내일은 쉴 수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퇴근 해 씻고 자다 일어 나 이 시를 썼다
박상화
노동은 노동 자체로 기쁘다. 노동의 결과가 내 손에 다 쥐어지는지 중간에 뻿길만큼 뺏기고 남은 것만 쥐어지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그 자체로 주는 기쁨이 있다. 돈귀신에 미친 현대사회에서 그 기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동의 결과, 손에 쥐어지는 돈이 노동을 기쁘게도 하고 괴롭게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마을이 있어, 말하자면 스머프들의 마을이 있어서, 농부와 어부와 광부와 대장장이와 바느질장이와 요리사와 목수등등 이 있어서, 모든 스머프가 제 할일을 하고 제 일의 결과물을 창고에 쌓아 놓으면, 모든 스머프들이 필요할 때 제가 필요한 것을 가져다가 쓴다고 가정하자.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필요한 건 창고에서 갖다 쓰면 되니 다른데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일 랄랄라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리고 즐겁게 일을 할 것이다. 이 마을은 땀도둑이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밥걱정을 하고 옷이나, 집이나, 학원비나 대출빚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좋겠다.

이 마을을 유지하는 전제조건은 믿음이다. 서로를 믿고 부족한 것은 이해해야 한다. 욕심부리지 말아야 한다.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 게으르면 안되고, 맡은 바 책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도태시켜서도 안된다. 장애가 있거나 남보다 자주 아파서 생산량이 부족하다고 조금만 소비하라고 하는 것도 안된다. 의심, 이간질, 폭력, 억압은 모두 안된다. 누구도 권력을 가져선 안되고, 정치를 해도 안된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모두가 공평해야 하고, 모두가 형평에 맞아야 한다.

이런 마을이 가능할까?  인간이 욕심을 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마 가족끼리 해도 안될 것이다. 부족공동체 시절엔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 것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른이 권력을 가지고 판결을 하고 존경을 받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있는, 또는 재해로 배고픈 이웃부족의 침입을 받고, 전쟁이 시작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조직을 갖게 되고, 강제로 국가에 귀속되면서, 모든 악이 생겼다. 국가에 충성한 댓가조차 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내가 지켜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하고, 힘은 돈이라서, 돈에 모든 것을 거는 상태가 되었다.

가상의 스머프 마을을 상정해도 현실화시킬 수 없고, 현실의 마을을 생각하면 돈을 따라야 한다. 어떻게 해도 노동은 노동으로서의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노동의 결과가 돈으로 환산될 때에만 보람이 아니라 생존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노동에서도 땀은 보람의 기쁨이 되기 어렵고, 단지 땀이 분비되어 발산됨으로써 느껴지는 순간적이고 화학적인 휘발성을 기쁨이라 믿어야만 하게 된다. 지독한 노동을 견뎌냈다는 성취감을 기쁨이라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가 땀에 있지 않고 돈에 있을 때, 빈곤한 정신승리를 위한 장치일 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이 땀이 씨앗이라 말한다. 이 땀에서 꿈이 솟구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직 노동의 가치를 땀에 두는 자세임에 틀림없다. 힘들지만, 그 땀방울 안에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땀이 정화시켜주는 것중에 가장 큰 것은 번뇌다. 땀에는 각종 고민과 두통을 유발시키는 걱정들, 오만 잡생각들이 땀과 함께 배출되는 기능이 있다. 그럼으로써 희망을 갖고 꿈을 꾸고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다. 명료한 시선을 얻는다. 머리가 맑아지면 세상도 잘 보인다.

지금 당장 스머프마을에 대한 대안이 없어도 좋다. 가가멜과 이즈라엘을 어떻게 방비할 것인지, 스머프들끼리 싸우고 질투하는 혼란을 어떻게 질서잡을 것인지 그 대책은 나중에 세워도 된다. 우선 급한건 머리를 맑게 하는 일이다. 돈에 어두워진 눈과 짜증을 땀으로 정화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다. 그것이 이 말에 담겼다.

"통증 깊은 젖은 몸으로 세계를 볼 때가 가장 투명하다"

돌아가자. 다시 노동의 땀으로, 순수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돈에 휘둘려 권력이 된 노동, 짜증이 된 노동, 욕망의 수단이 된 노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노동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 눈을 얻으려면 땀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세상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맑은 상상으로부터 가능하고, 맑은 상상은 땀으로 부터 가능하다. 손을 잡으면 길이 된다. 그것이 믿음이다. 죽을 것 같은 위험과 노동강도 속에서 흘리는 땀을 귀찮아 하지 않고, 비참하게 여기지 않고, 돈 생각하지 않고, 그 속에서 씨앗을 보는 시선이 예쁘다. 귀찮고 비참하고 돈생각이 어찌 안 났겠는가, 그럼에도 씨앗을 보는 눈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씨앗의 투쟁, 거기서 이기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이고, 나아갈 힘이 솟을 것임을 안다. 적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내 안의 돈을 이기고, 씨앗을 심는 것이 첫번째지만, 너무나 많이 밀려서 너무나 어려워진 자기 혁명, 그래도 나부터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 안에서 먼저 정리되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런 저런 생각으로 이 시를 읽게 해 주어서 고맙다.
조성웅
제목을 바꾸고, 문장도 더 담백하게 바꾸고, 경쟁하는데, 남을 밟고 서는데, 수탈하는데 쓰이지 않고 다른세계의 둥근 씨앗을 싹틔우고 꽃우는데 쓰일 그 힘의 가능성을 난 믿는다. 이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노동자들은 이미 다른 세계를 건설할 충분한 역량이 있다.  나는 이것을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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