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새벽 여명은

조성웅 2 1,338

 

주휴일

이 소박한 권리조차 엄두가 나지 않은 사람들은

빨간 날 새벽 여명 속으로 출근하고 있다

마치 새벽출정처럼 한 무리였으나

새벽 여명은

그들이 서로 다른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란 걸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들이 뼈마디 성한 곳 없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걸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짜증내고 윽박지르고 화내고 있다는 걸

명령에 익숙하고 명령이 당연하며 명령에서 벗어 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걸

매일 매일이 위험작업, 다행히 죽지 않았음으로 용접사가 되고 배관사가 되었다는 걸

좀처럼 친절해 지고 있지 않다는 걸

살피지 않는다

새벽 여명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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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새벽출정의 시대가 있었다. 모두가 몰랐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리하여 왕정시대나 군정시대의 '명하면 받들고, 까라면 까는' 주종적, 수직적 계급관계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였다. 저항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으나, 그 상황에서도 선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새벽출정길에 올랐다. 그래서 그길은 붉었다. 

그 뜨거운 시대를 관통해 학습된 노동자들은 그러나 분열되었다. 그냥 노동자로 한 덩어리였던 핏덩어리가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으로, 노조관료로 대공장 노조와 영세노조로, 사분오열되고 찢어졌다. 자본의 노조와해공작과 노동제도의 변경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전투력이 노동자끼리의 싸움에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는 sns를 타고 서로 삿대질하는데 소모되고 만다. 힘을 쓰고 나면 감정은 가라앉고 현실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법도 교묘해졌다. 전처럼 원시적 무기를 들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노동자 사이에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입지가 나뉘다보니 자기편 보신주의도 강해졌다. 게다가 정파가 또 나뉜다. 천갈래 만갈래다. 정쟁보다 소속이 중시될 수 밖에 없는 문화와 입장에서 이제 적은 둘 또는 셋넷이다. 자본가, 관료, 다른 소속의 노동자, 기타로 적은 자꾸 확산된다. 그런데 우리편은 몇 안된다.

"젓가락은 둘, 펜은 하나, 중과부적!" (노신)

이 중과부적의 싸움속에서 나날이 지쳐가는 것이다. 여기가서 싸우고 저기가서 싸워야 한다. 혼자 앉아서도 sns로 싸운다. 그리고 지친다. 고독하다. 같은 편인가하면 금새 다른 편이다. 이슈도 많다. 페미니즘도 있고 전쟁무기 배치, 환경 파괴, 그런 수 많은 이슈들이 둘이 아니고, 즉각 다뤄야할 이슈라고 믿는다. 노동자이다가 주식도 하고 정치도 해야하고, 전쟁도 개입해야 하며, 수없이 많은 연대도 해야하고, 또한 바른 수컷이어야 하고, 영세상인의 억울함도 들어주고, 술먹고, 노래방도 가야한다. 정작 그런 겉멋든 논쟁과 수없이 분화하는 자아속에서 스스로의 현실은 골병이 들어간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을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끝도 없는 연대와 논쟁은 지치게 한다. 길을 잃는다.

이제 새벽여명은 더이상 새벽출정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의 각오로 머리띠를 묶고 출근하는 직장이 아니다. 일 속에서 싸우고 자기편의 실적을 위해 싸우고, 위험과 싸우고, 친절하면 밟히는 현실과 싸운다. 적은 도처에 있고 너무나 많다. 

시인은 그 현실을 들여다 본다. 더 이상 붉지 않다. 생존에 목맨 개인들만 남았다. 밀리면 도태되는 경쟁의 현장뿐이다. 이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선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그들이 삶을 하나하나 파헤쳐 보아야 한다. 별것 없을 테지만, 답은 그 디테일 안에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박상화
"좀처럼 친절해 지고 있지 않다는 걸->좀처럼 친절할 수 없다는 걸" 정도로 바꾸면 좋겠다 싶다. 앞의 표현은 외국 어법의 번역투이기 때문에 쉽게 닿지 않고 복잡하다. 오늘은 바빠서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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