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 한 병 사 들고 할아버지 제사에 갔지요
아버지 목소리가
집 앞, 옥수수 키처럼 높아졌지요
그래도 장남이 따라 주는 술을 젯상에 올리는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장승처럼 커 보였지요
"아비가 못 먹이고 못 입혀서
네 놈이 운동하는 것 같아
항상 맘이 편치 않다"
아버지의 삶은 소금꽃,
제 삶의 첫 선물이었어요
흉터 같은 첫사랑이었어요
"능력이 서로 다른데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가져갈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땀흘리지 않고 돈 벌려는 도둑놈 심보가 아니냐
이철이나 김문수 같은 놈들 봐라
한때 운동한다 동네방네 떠들다가도
운동권 경력 삼아 여당 야당 들어가서
입다물고 있는 꼴 좀 봐라
저렇게 운동하려면
일찌감치 때려치워라"
- 아버지
사회주의는 현실의 모순에 눈 돌리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의 삶처럼 벼랑 끝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거예요
이건희의 얼굴이 김영삼의 얼굴을 닮아 가듯
사회주의는 이 땅 아버지들의 모습처럼
정치권력을 바꿔 내는 거예요
수 십년을 하루로 압축한 날들이 와요. 아버지!
"내 그런 날이 살아 생전에 올지 모르겠다만
이제 네 나이도 서른인데
운동을 하더라도
네 살 궁리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굳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엄마 마음 고생하지 않게 해라"
아버지는 제사상처럼 오래도록 말이 없었지요
말없이 술을 드시던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제 살을 태워 길을 낸 지방처럼
말씀했지요
"그리고 네 놈이 시를 쓴다고 하니
한마디만 덧붙이자
시는 우주 만물을 몇 문장 안에 표현하는 일이다
시는 무한히 크고 또한 작은 것이다
말장난하지 말고 영혼으로 써라!
시에 네 운명을 표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