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도대체 누가 누구의 생을 대의할 수 있다는 거야 젊은 날 난 ‘지도’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녔지만 아름다움은 지도될 수 없었지 아름다움은 스스로의 운명일 뿐, 어떤 지침으로도 도달할 순 없어 그렇게 아무도 설득 할 수 없었던 밤에는 자꾸 뭇별 쪽으로 몸을 뒤척이곤 했어
; 난 오늘부터 다르게 살 거야
자본가계급의 소유권에 도전 할 생각도, 감히 그들의 이윤을 몰수 할 생각도 하지 못함으로써 질병과도 같은 시간이 폭염처럼 쏟아 졌어 숨 쉬기도 곤란했지 작은 종파들 사이의 짜증스런 뒷담화가 정치를 대신하곤 했어 고통스럽게 사유 할 필요 없이 지침만 따르면 속편했어 이토록 명령이 달콤하다니! 서둘러 비판을 축출함으로써 당내 평화는 완성 됐고 당권은 명령의 언어로 구성되기 시작 했어 때로 부르주아 법정에 운동 내부의 논쟁을 의탁하고 동지들을 고소하는 것이 새로운 민주주의자의 덕목으로 보태어 졌어 지킬 것이 많아진 자들은 부끄러움조차 사라진지 오래, 공감으로부터 멀어진 신념은 신앙처럼 잔인해졌어
; 난 오늘부터 다르게 살 거야
눅진한 안개 속에서 동요하던 자들은 섣부르게 고해성사를 하고 경박한 태도를 취했지만 난 독립적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넌 조직적이지 않아’ 어느 흐린 날 이 비판이 유독 아프진 않았지만 난 어디쯤에서 길을 잃어버린 걸까? 다가올 우기가 곧은 질문을 잉태하리라 기대할 수 없었고 더더욱 외롭지 않기 위해 어설픈 정치적 생존을 택하고 싶지도 않았어 좀 더 외로워지고 싶었지 학습되지 않은 외로움은 살갗에 돋는 소름처럼 긴장됐지만 관심두지 않았던 곳에서 도착한 외침이 내 살에 맺혔어 한동안 촉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어
; 난 오늘부터 다르게 살 거야
슬픔의 밑바닥에 닿도록 아픈 몸은 공장 밖을 향했어 경쟁이 멈춘 대지를 닮고 싶었지 이름을 비움으로써 잡초는 해밀처럼 평등한 관계에 이르고 있었어 난 그 곁을 맨발로 걸었지 생생하게, 점거파업 총회처럼 바람-빛의 무수한 대화가 느껴져 모두가 존중받고 있었어 행복이란 단어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 이런 감정 오랜만이야 문득, 다시 살아보고 싶었어 난 오늘부터 평등에 목숨 걸고 살 거야
2016년6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