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국가는 점령군처럼 밀양에 왔다
손마디 지문이 닳도록 일궈 온 땅에
이 개노무 새끼들
국가는 적군보다 더한 원수로 왔다
사지가 들리고 팔다리가 꺾이고 짓밟히고
힘이 없어 속절없이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
억울하고 서럽고 분하다
전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린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
원전이 없다면 우린 더욱 잘 살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미생물장이 있어
서로를 돌보고 가꾸는 손길이 닿으면 고요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반딧불이 켜지고 별빛이 켜지고 마을 마을마다 마음빛이 켜진다
우리 생의 무한동력,
이 빛에 의지 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다
정말,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요대로 땅 파 먹고 살다가 죽고 싶다
학교 밖의 학교에 찾아온 어진이와 누피와 산골소녀와 선아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
학교 밖에서 다시 교실을 세우는 계삼이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
무수한 마음의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가꿀 수 있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행복하게 웃는,
땅이 대표고 미생물이 대표고 비가 대표고 바람이 대표고 햇빛이 대표고 나무와 숲이 대표고 내가 대표고 우리 모두가 다 대표다
더 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