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다 챙겨 놓으셨다
엄마 곁은 내 생의 유적지 같다
쥐 파먹고 먼지 쌓인 내 청춘의 비합법 문자들이 문득 발굴되기도 하고
열정으로 달 떠 올랐던 습작기의 시들은
여전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씩씩했다
metallica의 ‘master of puppets’ 앨범은 카세트가 없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편지를 읽는 것이 제일 좋았다
너의 시를 읽어보고 싶구나
웅이가 늘 말하듯이 등단하기를 바란다
나의 희망이 열매 맺기를 축원하는 엄마의 마음
이것이 내 시의 뿌리였다
엄마가 염원했던 주류문단의 등단코스는 밟지 않았지만
이제 날 시인으로 불러주는 동지들이 많다
이 시대와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서
그들의 벗, 시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등단이었다
싸움이 일어나는 곳에서 낭송을 하다 보면 안다
때로 내 온 몸에 스며드는 공감의 눈빛들
이것이 내가 받은 최고의 문학상이었다
내가 혁명가로 사는 일은
엄마의 말씀처럼 푸짐한 문예창작의 밭을 일구는 것이기도 했다
다시 아픈 엄마 곁에서
시와 혁명의 길을 생각한다
2014년4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