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엄마의 소원은 방안에 있는 정지였다

해방글터 0 1,063

 

“형 엄마가 암이래” 명절 때마다 보는 엄마와 살가운 대화 한 번 제대로 못 나눴는데, 인연 끊자로 마무리되는 아버지와의 고성과 그 불화만을 엄마 곁에 남겨 놓고 움막 같은 방을 떠나오곤 했는데, 나의 둘도 없는 세계가 위험하다 난 이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오래도록 외면하고 살았다 저 스러져가는 나의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에게 가는 길, 영티고개 쪽으로 지는 붉은 해는 산 정상에 무성한 흰 벚꽃을 심각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의 소원은 방안에 있는 정지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가부장의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가부장의 아들인 나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혁명가로 살고자 했던 나는 엄마를 철저하게 방치했다  

; 차별과 배제와 방치는 결코 혁명이 될 수 없었다 

 

오리막사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방에 엄마는 방치되어 있었다 보일러도 깔지 않은 차가운 방에 엄마는 방치되어 있었다 낡은 침대 밑의 전기장판과 전기히터로 겨울을 다 나도록 엄마는 방치되어 있었다 찬바람 부는 오리막사 한 편에 차려진 정지에서 젖은 손 호호 불어가며 할아버지 제사상과 아버지 밥상을 차렸을 엄마는 방치되어 있었다 몸에 한 기 들어 암이 몸을 다 점령하도록 엄마는 방치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가는 길은 왜 이리 한스럽고 아픈지, 해는 노을도 남기지 못하고 벌써 다 졌다 

 

 

2014년3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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