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난 진달래가 만발한 시간에 미용실‘툴’에 간다

해방글터 0 1,058

 

난 진달래가 만발한 시간에 미용실 ‘툴’에 간다 

루 선생은 인기가수 이효리의 머리까지 손본 8년차 헤어디자이너다

하지만 그녀의 미용실엔 의자가 하나만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리

 

스스로를 가꿔 아름답고 싶은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도구가 되겠다는 그녀

; 난 다수를 지도하려고만 했지 

한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본 적이 있는가?

 

항상 스포츠머리에

현대중공업 작업복에 걸쳐 입은 하청노조 자주색 조끼가 나의 패션이었다

적들은 노동자 풍의 범죄자 스타일, 전문시위꾼 리스트에 날 포함시켰지만 

난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대를 열사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의 거리에서 다 보냈다

 

머리를 기르고 파마를 하는 것은 참 어색한 일이었지만

루 선생은 한사코 날 격려해줬다

루선생이 디자인 한 볼륨매직은

내 표정을 한결 부드럽게 했다

사십 무렵이었다

 

부드러운 것은 노사협조주의라고 착각한 때가 있었다

열사투쟁으로 열려진 비정규직 투쟁, 난 직선의 시간을 소망했다

어떻게든 투쟁을 직선으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처음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부담스러운 것들은 순환 가능한 삶 쪽으로 열려지지 않았다

난 전투적이었지만 가부장적이었고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힘이 없었다

어쩌면 난 그들을 대신해 싸웠는지도 모른다  

뼈아픈 후회는 내장을 다 상하게 했다    

 

사십 무렵, 

난 스스로를 가꿔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이 다행스럽고

조금은 더 부드러워진 내 모습에 만족한다

아름다워지지 않고서는 혁명적일 수가 없었다 

 

난 내장이 다 상한 이후에야 

한 사람의 자리를 마련할 줄 아는 그 마음을 배운다

때 맞춰

스스로를 가꿔 아름답고 싶은 시간에 진달래가 만발했다

난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한 자리, 미용실 ‘툴’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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