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아내의 첫 번째 발걸음

해방글터 1 1,351

 

정월 대보름 달밤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마당에, 자국이 남을 만큼

흰눈이 와 있다

지난밤, 대보름 달빛이

옷을 잃어버린 것일까

깊이를 알 수 없는 감흥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참, 경쾌하다

 

감옥에 있을 때

"이럴 줄 알았으며 확실하게 하고 올 걸"

아내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활동에 대해

후회한다고 편지를 보내 왔다

출감한 그날

아내는 알몸으로 내 품에 안겨*

오래도록 울었다

이렇게 같이 있어도

잊혀질 것 같아

잊혀질 것 같아

오래도록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절실한 만큼 사랑이다

둘이 아닌 모두가 사랑이다

발 뒤 굼치에 물집이 잡히기까지 이력서를 내던 

아내의 발걸음은

노동자 운동 속으로 사상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미리 한계를 만들어 스스로 갇히기는 싫어"

대보름 달밤에

대보름 달빛으로 돌아온 아내는 

 

노동조합 속에 새로운 활동 공간을 찾은 아내의 눈빛은

사르르 젖이 돌 것 같았다

사르르 젖이 돌 것 같은 

아내의 발그스레한 얼굴빛이, 

그 정성스런 마음 빛이

빨간 젖꼭지에 꽉 차 있다

 

대문 앞, 신 새벽 흰눈을 밟고 지나간

아내의 그 첫 번째 발걸음 위에

경쾌한 아침 햇살,

절망이 희망을 일으키고

사람이 사람을 일으킨다

아내의 그 첫 번 째 발걸음이 파릇파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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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를 품에 안는다는 건

  한 여자의 향기를 품에 안는다는 건

  한 여자의 사상과 실천을 품에 안는다는 건

  내 삶의 초봄이었다 

  내 가슴속을 흐르는 맑은 미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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