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꽃피는 총 - 1차 희망버스가 도달한 그 새벽의 노래와 춤을 기억함

해방글터 0 1,012

 

 

총구에 꽃을 꽂아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자로 넘쳐나는 거리는 지독하게도 평화였다

쌍용자동차 공장 뒤뜰에는 내전의 지층에서 자라는 이름 없는 풀꽃이 피었다  

해고통지서 같은 눈물이 말라갈 무렵  

우리는 총구 같은 날들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첫걸음 부근에서 이미 다른 삶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이

우리의 행진은 서로를 죽어라고 닮아가는 일이었다

보폭을 맞추는 일은 때로 토론과 논쟁을 필요로 했지만 

누구도 합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차이가 차별로 굳어지지 않도록 모두가 예민해졌다 

 

우리의 행진은 대표자 없는 대표자 운동이었다 

위계를 허물어 찰흙 같은 협력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 웃음처럼 전복적인 힘이 또 있을까?   

 

폴리스라인 따위로 권위를 세우려 하다니!

이 시대착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물건은 발로 걷어차 버려라! 

우리는 음악처럼 금지의 땅에 발을 디뎠다

생은 아주 간단하게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머뭇거림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자본의 벽을 넘었다 

잡아 주고 끌어 준 손의 온기는 무장한 자본의 사병보다도 강했다

 

권위를 갖는 것들은 폐가처럼 중지됐고 

닫혀진 공간을 찢으며 생겨난 틈으로 한 번은 가 보고 싶은 세상이 열렸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강병재 동지가 한진중공업지회 해고자 박성호 동지의 손을 잡았고

재능지부 유명자 동지는 한진중공업지회 해고자 이용대 동지의 절규로 젖어들었다

신분제도의 위계 질서를 횡단하는 몸짓들은 유연한 곡선을 갖는 춤이었다  

고등학생 사회주의자인 이동현 동지가 백기완 동지의 추상같은 선동에 이끌릴 때

생은 맑은 고음 부분에서 만개한 노래였다   

우리의 행진이 도달한 새벽은 

노래와 춤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빛나는 해방구였고

노래와 춤으로 완성될 수밖에 없는 내전의 꽃이었다

 

지금 생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정서적 공감이 풍부한 이행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진은 삶에서 시로 창작되었고  

노래와 춤으로 끊임없이 변주됐으며  

바람-꽃을 타고 공장과 사회로 범람하는 영속혁명이다

마침내 우리는 자본주의의 내륙을 타고 봉기로 북상하는 연분홍 진달래 군락,

꽃피는 총이다

의회 없는 민주주의를 향하는 꽃피는 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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