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금지 위에 세워진 정치적 신념은 반혁명이다

해방글터 0 1,115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 일동’▲은 성폭력 가해자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조직의 가부장 문화에 질문을 던지며 투쟁을 시작했을 때 

여성주의는 조직의 공식입장이 아니었으므로 간단하게 묵살됐다

피해자 지지모임의 공감을 이루기 위한 비판과 토론은 중앙의 방침으로 금지됐다

 

피해자는 더욱 고립됐고

조직의 핵심이론가였던 가해자는 안전하게 자신의 방어이론을 만들어냈다

가해자의 변명은 곧 중앙의 방침이 됐고 누구도 조직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도전받지 않는 지도력은 노예적 습성에서 자라났다

지도자를 보위하는 것이 조직노선을 사수하는 신념으로 굳어졌다    

조직적 계통을 따라 피해자에 대한 음해와 비방이 조직됐다  

피해자는 피해자이기 이전에 정치적 반대파였다

동지라는 이름에 값하지 못하는 

또 한 명의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빠르게 축출 당했다

조직은 계급투쟁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가 됐다

; 교류하고 논쟁하고 검증받지 못한 신념은 너무 쉽게 종교가 된다  

 

노해투사의 정치적 신념은 벽처럼 확고했으나 피해자에겐 짐승 같은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꿈꾸는 혁명적 열정도 권력에 이르자 순식간에 낡았다

 

따뜻한 웃음과 즐거운 대화 속에서 태어났고

세상의 저음에서 들풀처럼 노래하며 들풀처럼 유려했던

그녀를

     그녀의 눈물을

                  그녀의 질문을

                                그녀의 항의를 

조직방침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금지 위에 세워진 정치적 신념은 반혁명이다

 

그녀의 여성주의는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삶의 자리에 꽃핀 내전 

총구를 떠나는 총탄처럼 

                      단절은 철저한 것이다 

 

 

 

 

___________

▲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 일동’(약칭, 노해투사)은 

비합법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이었다 

 

한 고전주의자의 낡은 외투처럼 

비합법적인 삶이 단어 자체로 더 완벽하다거나 

진실에 더 가깝다는 건 아니다 

  

피해자 동지가 첫 번째 질문을 던졌을 때 

노해투사는 자신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비판과 토론을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진실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피해자 동지의 내장산 단풍 같은 언어는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전혀 물기를 잃지 않았다

따뜻하고 촉촉했다 

눈물처럼 독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또 있을까?

조직적인 이유로 그녀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았을 때

난 강해질 수 있었다

 

건조한 문자로 구성된 노해투사의 내부에 

그녀의 눈물이 스몄을 때

균열은 시작되고 

그 균열을 따라 새벽녘에 이르렀을 때

노해투사는 성폭력 가해자임을 인정했다 

 

가부장주의는 관료주의가 기생하는 숙주였다

노해투사는 자신의 권력이 거처했던 곳을 성찰하기 시작했고

조직을 해산함으로써 그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조직노선 평가와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노해투사 성폭력 대책위의 구성, 

자신의 오류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한 이 집단적인 노력은  

피해자 동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직적 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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