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나에게 조용히 다가온 전망

해방글터 0 915

 

씻을 곳 하나 없어

산발한 머리,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는 사람의 저녁입니다

배춧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다 울컥, 하는 사람의 저녁입니다

 

젖은 몸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서러운 맨몸입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평등에 가까운 투명입니다

 

상처받은 몸으로 내 곁에 왔다가

상처받은 몸으로 내 곁을 떠나간 그대여 

저물녘에 이르러 더욱 사무치는 날입니다 

 

내 젖은 몸은 그댈 위해 저녁밥상을 차리겠습니다

내 손맛이 그대 입맛에 맞을지 걱정입니다

 

내가 뼈아픈 건 그대의 좋은 대화상대가 돼 주지 못했다는 겁니다

판단과 규정에 익숙한 나의 대화법이

공감에 적응하기엔 너무 서툴고 어설펐습니다

 

그대는 특별하게도 기타를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기타를 치며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를 부르는

그대 모습이

별빛의 음계로 가득 찬 그대 목소리가 

나에게 조용히 다가온 전망인 줄

그대가 떠나고서야 알았습니다 

 

흐드러지게 노란 개나리가 만발한 봄날 봄날

속절없이 그대를 떠나보내고

난 노란 개나리처럼 아팠습니다

 

아프도록 내 삶을 수평에 이르게 한 

그대의 투쟁이 

삶의 치유력임을 알겠습니다

밥상을 마주 보고 환히 웃던 그대를 

젖은 몸으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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