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짜른다 짜른다는 소리만 밥 먹듯이 들어 왔고
문자 한 통에 목숨이 날아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차 나올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헐뜯고 싸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느 날 눈빛이 달라졌다
마주 잡은 동지들의 따뜻한 손이
새로운 생의 첫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을 때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은 갑자기 사소해지기 시작했다
“노예계약서를 거부한다. 계약서를 체결하려면 정몽구가 직접 나서라”
가장 생활적인 것이 가장 계급적인 요구였고
가장 계급적인 요구가 가장 대중적인 공감과 직접행동을 이끌었다
지금 당장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
자본의 지불능력은 고려할 필요도 없었고 교섭의 절차나 기술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인간적인 삶은 언제나 금지의 영토에 거침없이 발을 딛는 반란 속에 있었다
아직도 가슴 떨리게 자랑스러웠던 일,
신새벽, 동성기업 노동자들은 가차 없이 시트사업부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악몽처럼 불편했던 굴종과 체념을 뛰어넘자마자
이윤을 위한 생산이 중단됐고 명령이 중지됐다
“그래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라인을 태워서라도 이번에 비정규직 인생 끝장내겠다”
동성기업 노동자들은 공장점거파업을 여는 총성이었다
우리는 현대자동차 1공장 CTS점거파업농성장에서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했다
CTS점거파업농성장 총회, 비거점파업농성장 총회는
한 번도 사용해 본적 없는 우리의 정부였다
우리는 몸에 풀물 든 것처럼 이 정부를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명령의 시간을 인간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대화의 시간으로
통제가 지배했던 공간을
인간의 심장이 뛰는 합의와 협력의 공간으로 대체했다
우리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의 질서가 갑자기 중단된 곳에서 동지들의 발언은 짧고 명쾌했다
우리는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다른 세계의 언어를 배운 새로운 사람들
모두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꿈의 방향을 이해했다
저항의 외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