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목숨은 걸 수 있어도 왜 혁명은 꿈꾸지 못하는가

해방글터 0 1,087

 

 

정자 대게를 푸짐하게 먹고 찜질방에서 한잠 나고 나니 

명박氏가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TV 앞에 있던 찜질방의 사람들은 보이콧주의자들이었지만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 앞에 순응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치는 명박氏의 눈빛은 독사처럼 날카로웠지만  

세계공황 위에 세워진 가건물처럼 불안해 보였다 

 

민주노동당 선거대책위, TV 앞에 나란히 앉아 있던 

영길氏와 석행氏는 완전히 똥 씹은 얼굴이었다 

표를 구걸하기 위해 부르주아 독재의 성지인 현충원을 참배하고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친절하게도 ‘동지’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도 모자라 해고를 자유롭게 해 주고 파업권을 팔아넘긴 한국노총을 찾아가 

머리 숙여 지지를 호소했다 

‘표’를 위해서라면 쫀 심이고 전통이고 혁명이고 나발이고 없었다 

 

금속노조 위원장인 갑득氏는 자본가들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늘로 오르고 매달리고 

또 한 명의 분신한 노동자는 또 한 명의 분신한 노동자가 됐다  

이제 유서가 있어야 열사가 되고 투쟁은 조합비를 날리고 조직력을 훼손하는 일

갑득氏는 산별교섭(사회적 합의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행위는 

금속노조 위원장의 이름으로 엄단하겠다고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노동부 정례협의회(노사정 협약)를 통해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포하고 

곧바로 위로금과 민주노조 깃발을 맞바꿔치기 한 하이닉스 합의서에 당당하게 직권조인 했다

갑득氏는 현대자동차 정규직노동자였고 민주노동당 열혈 당원이었다   

 

GM부평비정규직지회 이준삼 동지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외치며 한강 물로 뛰어내릴 때

회찬氏와 상정氏는 한강 물의 이미지를 복사해 ‘푸른 진보’를 외치기 시작했다

너무 너덜너덜해진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이  

과연 한겨울에 한강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심정을, 뼛속까지 사무치는 분노를 이해나 할까?  

푸른 진보신당이 내거는 새로운 슬로건은 사회연대전략이었다 

연대 들어가고 전략 들어가서 말은 무지하게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고 타협해서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것

부르주아 독재를 그대로 놔두고 개량의 무지개 색으로 덧칠하는 일이다 

 

나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비판적 사이였던 몇 몇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이 ‘연합’했다

그들은 비정규직 철폐를 혁명하자는 것으로 해석하는 

개량주의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행강령은 ‘연합’을 위한 기준선이었지만 

지나치게 전투적 조합주의에 밀착돼 있었다  

난 행동해야 할 때 단호한 직접행동을 위해 

강령상의 통일은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고 

비판적 거리를 두었다 

 

사십 무렵, 정세는 변하고 있었고 정치적 재편기였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조합 대표자로 살아 왔다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이용석, 박일수, 류기혁, 김동윤

손 내밀면 봄빛처럼 손끝에 와 닿을 것 같은 이름이

나의 강령이었고

라인을 세우고 공장을 점거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긴장된 눈빛이

내 손금을 타고 심장에 새겨진 전술이었다

내 30대는 전적으로 목숨 걸고 투쟁하는 비정규직 투사들의 몸짓에 소속되어 있었다

 

정치적 재편기,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던 동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경제투쟁에는 목숨 걸 수 있었어도 

목숨을 다하여 혁명을 꿈꾸지 못했던 한 시기를 다 보내고

난 혁명정당이 건설되기 전까지 하나의 써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수정한다

혁명은 조직운동이다   

하늘로 오르고 푸른 강물에 몸을 던지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이 비상한 몸짓이 찾아야 할 주소는 코뮤니즘이다▲

 

사십 무렵, 정세는 변하고 있었고 정치적 재편기였다

난 지금까지 투쟁하자고만 했지 한 번도 동지를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적이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의 시간이 태어나는 장소에 때늦지 않게 도착하는 감각이다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손금을 통해 대화하는 시간 속에

그대 심장에 새겨진 따뜻한 언어를 안아 보는  

심장과 심장의 포옹 속에

두근두근 

다른 삶으로의 이행기가 있다  

 

 

 

____________

▲ 조력자들, 혁명의 시간을 앞서서 실행하는 사람들  

 

 “아직도 혁명정당이냐 ㅋ”

한때 혁명을 꿈꾸었던 이들의 냉소에 대해 

난 그들의 고해성사보다 나의 자기비판이 더 뼈아픈 것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속했던 한 조직의 혁명정당 건설 운동은 

한심한 지령이었고 뚱뚱한 위계였으며 

오류투성이의 무오류였고 고철처럼 딱딱하게 녹슨 규율이었다

 

고립은 치명적이었다

적을 향해 날아가야 할 비수가 오히려 조직 내부에 와 박혔다

비판은 좀처럼 허용되지 않았고 서둘러 정치적 반대파는 축출 당했다  

다들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한다고 확신했으나

중앙의 방침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직은 원형감옥을 닮아갔다 

 

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을 휘감고 있는 관료주의에 타협하지 않았으나 

이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난 첨탑 위에 한 발로 선 것처럼 절망했으나 … 내 절망의 바깥에서 …

이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미조직노동자들은 서로 만나고 있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령 없이도 충분히 의식적이었고 위계 없이도 활력 있는 주체들이었다  

자신이 걸어온 걸음을 평가하며 세대를 넘고 성별을 넘어 다종의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있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지 않았지만 무장한 공권력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내가 새롭게 학습한 노선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으로의 결정적인 한걸음, 혁명의 시간을 앞서서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력자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혁명정당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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