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누구도 허무하지 않았다
연단도 없고 사회자의 거창한 소개도 없었지만
누구나 직접 발언하며 자기 삶의 주인공을 꿈꿨다
이 꿈은 누가 뭐라지 않고 조금만 그냥 두면 스스로의 길을 찾을 것이다
촛불은 결코 광장에 갇히지도, 거리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모두가 독립적이었으나 기어코 함께였다
거리 전체가 대화와 논쟁이었다
대책위원회의 트레일러와 대형 스피커가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영역에서 촛불은 타고 있었다
촛불의 전술은 흐르는 것
막히면 흐르고 또 막히면 샛길로 흘렀다가 대로에서 다시 합류해 청와대 앞까지 진격했다
자본가계급의 심장부에 대표자 없는 대표자들이 섰다
물밑 거래하고 협상하고 타협할 수 있는 배후가 없으니 해산을 명령할 수도 없다
수습을 고민하는 자들은 참 난감하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촛불은 두려움 없이 역동적이었다
그들은 즉석에서 토론하고 결정하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비타협 직접행동은 가장 두려운 순간조차 유머를 잃지 않았다
전경들에게 돌 대신 과자를 던지고 물총을 쏘고
거리에서 경찰들이 밀어붙이면 도망가지 않고 “나 잡아가라”며 닭장차에 올라타 버린다
모두가 현장 기자들이 되어 핸드폰으로, 무선 인터넷으로 투쟁 현장을 생중계 한다
국가와 조금도 타협할 생각이 없는 참 독특하고 생기발랄한 시위대다
촛불은 공권력을 순식간에 우스꽝스럽게 만들며 반란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밤과 새벽을 잇는 자리에 축제의 삶이 있다
촛불은 MB산성을 만나고 물대포를 만났지만
오히려 우애와 연대로 타올랐다
지침이 없어도
모두가 사수대가 되어 온몸으로 물대포와 마주 섰다
지침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부상당한 동지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벌였다
지침이 없어도
모든 곳에서 우비와 옷과 김밥과 음료수가 보급됐다
지침이 없어도
노래와 춤과 토론이 새벽을 풍성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우애와 연대, 이 반란의 몸짓들은 세대를 넘고 성별을 넘어
마침내 저 낡고 우스꽝스러운 물건, 청와대도 넘었다
대표자 없는 대표자들, 우리가 혁명적 전망이다
이 반란의 몸짓이 만들어가는 이행의 삶
좀 더 인간적이고 보다 민주적이며 더욱 문화적인 것이 혁명적이다
펼쳐라, 촛불
경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