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어제는 언양 소호에 있는 고은희, 김형기 부부 집에 갔네
2001년 효성공장점거파업투쟁의 당당한 비정규직 투사 고은희 동지
투쟁 패배 이후 ‘한’ 설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나란히 병 또한 깊어졌을까
유방암과 한 판 결전을 치루고 있었네
죽음을 다스리면서 야생초를 따고 말리는 손길 위에
봄빛처럼 내려 앉은 쾌활한 웃음
투쟁의 야전사령관, INP 사내하청노조 전 위원장, 김형기 동지
아내의 웃음을 지키는 것이 사상이다
아내의 웃음을 살리는 것이 실천이다
비정규직 투쟁도 잠시 접고
언양 시내 영세사업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
용접사로 일하고 있네
알콩달콩 고은희. 김형기 부부의 소담한 집 마당, 매화나무 한 그루
가장 혹독한 날씨에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참 무모한 용기로
연둣빛 새순을 내밀고 있네
고은희 동지의 죽음을 견디는 쾌활한 웃음이
아내의 쾌활한 웃음을 지키기 위한 김형기 동지의 마음 씀씀이가
연둣빛 새순으로 살아나네
오늘 침묵했지만 오늘 또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일어서는
하청 노동자들이 있는 현장으로 돌아가겠네
어제 밤사이에 포기하고 싶었으나
내 죽어 묻힐 무덤은 그래도 저 죽음의 공장
연둣빛 새잎파리, 적빛에 더욱 가까운 꽃잎들
가지와 가지 사이에 식물처럼 펼쳐진 봄푸른 하늘과
이 모든 색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하루 밤사이에
풍경을 바꾸고, 질서를 바꾸는 활력으로
오늘 아침
옆 개천을 흐르는 새맑은 물소리를 품었네
답이 잘 보이지 않는 비혁명기의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일상의 내부를
흐르는 투명한 물소리를 온통 품었네
무슨 일이 꼭 터질 것 같은 임박한 예감을 품었네
오늘 아침,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발 디딜 틈 없이 촘촘한 봄빛과 함께
매화꽃이
적빛의 매화꽃이
죽음을 다스리는 고은희 동지의 쾌활한 웃음처럼
아내의 쾌활한 웃음을 지키기 위한 김형기 동지의 사상 실천처럼
단연 돋보이게 피기 시작했네
가장 혹독한 날씨를 견디며 만개한 적빛의 매화꽃 향기
한 천리까지 향기를 뻗어
한원cc 원춘희 동지의, 경찰청 비정규직 동지들의
따뜻한 눈물이 스민 붉은 눈빛에 가 닿네
2001년 효성공장점거파업투쟁의 당당한 비정규직 투사 고은희 동지
죽음을 딛고서 직립해
이웃한 힘들을
하나로
적빛의 매화꽃 향기에 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