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흐린 날 - 류기혁열사를 이처럼 무기력하게 보내며

해방글터 0 1,014

 

 

비바람 속으로, 비바람과 함께

너는 통곡처럼 갔다

유서 한 장 없이

너는 모든 것을 말했고

끝까지 ‘비공식적’이었다

열사가 아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언어들이 공식화되었다

너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남은 내가 너무 아프다

분노보다도 먼저 가슴이 턱 막혀 주저앉고 싶은 

날 용서하지 마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건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밤 세워 고민하고

자신의 삶을 온통 거는 결단이었다 

운명이었을까

너의 새로운 삶의 출발지는 박일수 열사 영안실이었다

이후 당당한 비정규직 조합원으로서

단식농성장에서, 파업농성장에서 그리고 지역 집회에서

너는 전혀 새로운 삶으로 자라고 있었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 대해서 질문을 시작했다

너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최후의 질문은 목숨이었고

이를 통해 단결과 연대의 선들을 이으려고 했다

 

열사투쟁을 조직하라는 항의가

무책임한 평론으로, 종파주의자들의 분열책동으로 낙인찍혀도

언제나 진리는 연둣빛 새순처럼 비합법적이다

목숨에 거짓이 없듯 거짓 없는 투쟁은 언제나 불법 비공인 연대파업이었다

 

정치적 전망 부재의 흐린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온통 흐린 날들이 날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다

정치적 전망 부재의 안개 밖에서 길을 찾았으나 

사실은 더듬고 두드려가는 안개 속에 길이 있다는 걸

도착지가 희망이 아니라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주저앉고 싶은 여기 

이 도정이 희망의 주소지라는 걸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웃음은 찾아온다 

웃음에 여백이 생기고 밝은 빛이 드는 건 다 견뎌냈기 때문이다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머리띠를 두른 너의 영정사진을 본다 

다 견뎌내고 밝은 빛 속에, 밝은 빛으로 서 있는 널 생각 한다 

여백 깊고 밝은 빛이 드는 너의 웃음이

이제 우리의 방향이다 

여백 깊고 밝은 빛이 드는 너의 웃음은

지금 도무지 될 것 같지 않고  

그래서 현실적이지 않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과감하게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하게 하는 힘이다

 

내 아들 문성이 줄 장난감 사가지고 집에 놀러 가겠다는 약속

이제 너의 그 약속, 내가 지키기 위해

네가 살고 있는 곳, 노동해방을 꿈꾼다

혁명을 하자는 것이냐?

그렇다 혁명을 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자본주의에서는 못산다 

 

정치적 전망 부재의 흐린 날, 류기혁 열사여

산자의 몫은 산자의 몫으로 남기고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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