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다가 올 10년은

해방글터 0 1,032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고 결의 결사 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정하고 친절한 날들이고 싶었으나 

다정하고 친절한 날들이었다고 애써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고

걸어왔던 길 참, 허름합니다

 

뿌리줄기로부터 떨어져 지상 위에 고립된 붉은 단풍잎들

지난밤, 꽃별들이 떨어지던 행로를 따라왔습니다

메마르고 외로웠으나 잘 견디고 있습니다 

사각 사각

좁고 허름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물기 없는 날들도 쌓이면 푹신푹신해지는지

저 붉은 단풍 담요 위에 눕고 싶었습니다

지난밤, 열띤 토론 뒤의 뒤풀이 숙취 때문이기도 했으나

이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모하게도 

다시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는 결의를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꾿꾿하고 허름한 골목길 한 켠

태평식당에 들어섭니다

허름하다는 건 태평식당만큼이나 오래된 세월

여백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한 세월을 다 났습니다

 

백반 두 개요 

할머니는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김을

아침식사로 내왔습니다

애배추의 풋풋한 향이 나는 구수하고 얼큰한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고소한 김의 내음이

사무치듯 정겹습니다

밥 한 그릇 더 떠와

"어여 더 먹어 어여"

할머니의 정겨움이 한 세월 날 힘을 줍니다

사르르 

내 삶에 물기가 돕니다 

 

다시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겠다는 결의가

밥 한 그릇 더 내주는 이 정겨움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애배추의 풋풋한 향이 나는 구수하고 얼큰한 배추국과

들기름을 바른 고소한 김의 내음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마르크스주의자, 나를 만나러 오는 모든 동지들을 위해 

배추 속을 다듬어 양념으로 버무리고 

쌀 뜬 물에 된장 풀어

배추국의 구수하고 얼큰한 정겨움을 차려주고 싶습니다

들기름을 바르고 약 불에 살짝 구어

입안 가득 고소함을 전해주는 

김의 여백 깊은 향기를 차려주고 싶습니다

 

다가 올 10년은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는 못하겠지만 

여백 깊은 향기로 살아 

내 삶에 사르르 물기가 도는 투쟁으로 살아  

구수하고 얼큰한 해방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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