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밥 한끼의 정치

해방글터 0 1,099

 

 

일요일 저녁 동부경찰서 유치장

수사과장은 하청노조 위원장인 날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수사과장은 김치 찌게 백반을 시켜놓았다

까짓, 부담도 되었지만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다는 유혹을

피해갈 마음은 없었다

 

수사과장과 정보계장은 무척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 많다고(씨발놈들, 쳐 넣은 놈들이 누군데)

차린 것 없지만(정말 차린 것 없이 생색내네)

마음이니 밥 한 끼 하잖다

이 친절한 미소는 바라는 게 있다는 뜻

대한국인들은 밥을 같이 먹으면 정이 든다는데

밥 한 끼의 거래

밥 한 끼의 정치

 

“열사투쟁은 빨리 끝나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큰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차분차분 가야 한다”

 

수사과장과의 친절한 관계는

열사투쟁을 지속하고 '한꺼번에' 하청노동자들의 폭발을 조직하려는

동지들과의 불화 혹은 적대

이 친절한 관계는 칼보다 무섭다

이기적인 몸, 

적들은 집요하게 습성을 파고 든다

 

이젠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대통령을 만나고 노동부 장관을 만나고 경총을 만나는 자리 

카메라 앵글의 의도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다정하다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그 절박함이 닿기에는 

총연맹 관료의 자리는 너무 멀리 너무 높게 떠 있다

― 조합원과의 유일한 접촉은 조합원 서류철이다

   교섭과 마무리가 그들이 먹고 사는 방법이다 

교섭과 마무리를 위해 총연맹 관료들은

현장조합원들보다 적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자주 연락하고 친절하게 만난다 

적대는 오히려 적들보다 내부에서 강화되어 왔다

밥 한 끼의 정치에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의 가슴에 피멍이 맺혔는가

 

저녁식사를 끝내고 

수사과장이 준 담배 한 가치를 피우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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