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탄환을 꿈꾼다 - 2001년 효성공장점거투쟁 이후

해방글터 0 1,057

 

 

서점에서 시집을 뒤척이다 

시집 한 권사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낙엽 다진 밤

지난여름, 손에 손에 쥐어졌던 꽃병을 생각한다

 

; 손아귀에 쥐가 나도록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휘발성으로 타는 분노 속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난 분명 탄환을 꿈꾸었다

 

13년 현장통제와 무쟁의를 청산한 여름 하늘

바람 불지 않아도

타는 땡볕이어도

통쾌하다

한 판 붙자

 

; 휘발성으로 타는 분노 속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머리띠를 묶은 조합원들

탄환으로 날아가 적의 심장에 박힐 

절정의 꽃이었다 

 

그러나 총성 보다 먼저 성탄이 오고 있었다

공장점거파업도, 분임조모임에서 형성되었던 노동자민주주의도

13년 무쟁의를 깬 그 뜨거웠던 정규-비정규 단결의 함성도

꽃병이 날아가는 포물선을 따라 한 점 불꽃으로 져 갔다

 

정리해고․손배가업류의 낙엽을 밟을 때마다 

비명처럼 몸이 아프다  

현장은 숨소리조차 죽었다

모두들 떠난 자리

난 홀로 정류장에 섰다

공장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나는 공장으로 간다 공장으로 향하는 

내 눈빛은 아직도 

곧 죽어도 함께 살아 낼 사랑인가

탄환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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