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다시 저 꽃 빛 속으로

해방글터 0 1,139

 

 

울산구치소에서 출소한 날 

밤새 뒤척인다 

다시 머리띠를 묶고 하청노동자들 앞에 선다는 게 

이토록 설렐까 

그 어둡고 무거운 얼굴들이 보고 싶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방어진행 버스를 탔다 

늦봄으로 남목 고개를 넘자 드디어 현대중공업이 나타났다 

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남목 고개를 넘어 시청으로 갔는데 

나는 그 길을 따라 현대중공업으로 돌아간다 

 

현대중공업 중전기문까지 오는 담벼락에는 온통 장미꽃이 피어있었다 

장미꽃이 경비대들처럼 현대중공업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초봄, 죽음을 뚫고 연둣빛의 새싹처럼 발화하던 깃발과 구호들 

박일수 열사 정신 계승을 외쳤던 동지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일수 열사는 동지들의 가슴 곳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장미꽃에 갇힌 절규 

장미꽃에 갇힌 저 담장안의 착취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온전하게 노동자계급의 것이나 

난 착취의 외각 경비초소인 장미꽃이 폭력 보다 고통스럽고 두렵다)

 

동해안에서 떠오른 아침햇살 

죽음의 공장을 가로 질러 

착취의 외각 경비초소인 장미꽃잎을 지나

현대중공업 중전기 정문 앞에서 집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출근하는 하청조합원 동지들 

중전기 정문 앞에서 집중적으로 빛나는 아침햇살 속으로 

일제히 질주 한다 

장미꽃보다 장관이다 

장미가시보다 날카롭고 위력적이다 

비록 오늘 우리 승리하지 못했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저 집단적인 모습들, 저 일사 분란한 행동들 

꽃 빛이다

 

다시 저 꽃 빛 속으로

힘찬 출발, 머리띠를 묶는다 

박일수 열사의 비타협적 투쟁 정신을 함께 묶는다 

파워그라인더공 임단협 투쟁의 힘찬 함성을 함께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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