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1.03평 독방에서도 난 꿈을 꾼다

해방글터 0 1,140

 

 

구치소도 사람 사는 곳이다

팔다리 가슴팍 등판에 온통 용문신을 한 강짜들도

행님요 사근사근 앵기는 모습을 보면

참 선하단 생각이 든다

내게 사진까지 보여주며

절도범 군대형은 세상으로부터 

쭈쭈빵빵한 마누라를 훔쳤다고 

자신이 한 일 중에 최고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박으로 들어 온 영배형은 마누라 말고

애인 면회 오는 재미로 하루를 사는데

나가도 별 볼 일 없고

워쩌꺼나 

한 탕 멋지게 해 불고 변호사 살 돈 솔찬히 챙겨 

다시 와야건네 고민 중이고 

하여튼 고향도 다르고 죄명도 다르고

들어온 사연도 다들 구구절절하지만

구치소 사람들이 구속된 공통된 사유는

“사유재산 침범죄”

 

사유재산은 신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인데

신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을 

밥 먹듯이 드나들고 겁도 없이 훼손한 구치소 사람들이 

난 꼭 투사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죄명은 이젠 하도 낡아 너덜너덜 해진 

사적소유의 문패를 박살낼 슬로건 같다

 

불법도 마다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그들의 몸짓에 비하면 

합법적으로 허가된 집회에 참여하고

행진하고 연설하다

공안범으로 잡혀 온 내가 더 초라해 보인다

열사투쟁 내내

전투적으로 말했지만 전투적인 행동을 조직하진 못했다

허가된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 소심함

막 피기 시작한 새싹 앞에서

나의 진짜 죄명은 부끄러움이었다

 

생존을 위한 몸짓은 칼날처럼 정당했다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 신성한 영역을

아주 우습게 알고 밥 먹듯이 드나들고

겁도 없이 훼손한

구치소 사람들과 함께

1.03평 독방에서도 난 꿈을 꾼다

이 땅의 판검사들은

억누를 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선고하더라도

칼날처럼 정당하고 절박한 생존의 몸짓,

사적소유 철폐를 위하여

1.03평 독방에서도 난 꿈을 꾼다

쇠창살을 넘어 구치소 담장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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