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얼마 전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꽃이 핀 적이 있다
난 그 환한 삶의 꽃자리에서 앳되고 때론 무모한 열정마저 순수했던 그녀와 그들,
한 때 나의 벗들을 불러본다
순식간에, 또한 기습적으로 꽃이 지고
어떤 싱싱한 조짐조차 사라진 텅 빈자리에서
그녀와 그들, 한 때 나의 벗들을 불러본다
이제 친절함 속에 칼을 숨길 수 있고
투쟁 속에서 배신을 읽을 수 있고
연대 속에서 정파의 이해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조직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권력의 위험을 체득하고 있는 나이
난 면도날 위에 선 것처럼 슬픔을 느낀다
난 종종 듣는다
부르주아 정치판처럼 더러운 대공장 노동운동 판에서
노조관료들, 노사협조주의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판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정파의 이해를 위해 노동자 투쟁을 이용하려는 판짜기를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지만
이들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활용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우리가 원칙만 나발 부는 무능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들을 때마다
난 한 때 나의 벗들에게 능구렁이가 다 되 버렸다고 말한다
종파주의에 여린 심장이 찔렸지만
동지에 대한 정성스러운 마음을 잃어갈수록
종파주의의 또 다른 기둥이 자라나고
현장조합원들과 함께 하겠다고 했자만
사상에 귀 닫고 눈 막으면서
어느새 ‘전투’ 자 하나 더 붙은 조합주의자로 지쳐가는 나의 벗들이여
막 봄이 오기 전에
난 살얼음 밑을 흐르는 청청한 시냇물 소리를
내 몸이 환해질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들었다
봄빛에 새잎이 흔들릴 때마다
찰랑 찰랑
청청한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왜 난 이 청청한 시냇물 소리가 송가처럼
―찰랑찰랑
송가처럼 들렸을까
슬픔이 깊을수록 투쟁의 강도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