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벌써 저 뒷산은 한 계절을 마감했다
조용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뒷길이다
뒷길을 죽 따라 걷다보면
성급한 나뭇잎 몇 장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 저린 발걸음은 순서도 없이
포장마차 앞에 서 있다
부산 오뎅 하나를 집어 간장에 찍어 먹는다
난 오뎅보다는 속까지 익은 무시와 파의 맛을,
걸쭉한 오뎅국물을 더 좋아하고
통통한 아줌마의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다
오늘도 통통한 아줌마는 부지런히 떡볶이를 고추장에 버무리고
튀김을 붙이고 있다
통통한 땀방울이 아줌마에게 맺혔다
98년 자동차에 다니던 아저씨가 정리해고 되고
그것도 모자라 빚보증을 잘못 서 가산을 탕진한 남편을 대신해 시작한 포장마차
하루 18시간의 노동
탱탱 부은 다리
“산목숨 거미줄 치겠는 겨”
아줌마의 통통한 웃음은 활기차다
뒷길을 죽 따라 집으로 가다 보면 초록미술 간판이 보인다
문 닫은 지 벌써 몇 년
빈집이다
여닫이문, 빛바랜 코팅지 위엔
민중의 당,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적혀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빈집과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빈집은 초록미술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퇴근길
나의 저린 걸음은 집 앞 구멍가게 앞에 선다
한 때 중공업 노동자였던 아저씨
다리 하나를 잃고 종일 가게를 본다
아줌마는 에쎄 담배를 하루에 한 갑 넘게 피운다
하루 한 갑의 담배를 사는 곳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저씨는 벌써 디스 담 배 한 갑을 준비하고 계신다
어이 수고했어, 이제 애 아범인데 항상 조심해야 써 알았째
내가 거창하게 노동운동을 한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나를 채우고 키운 것은 작고 따뜻한 것들이었다
가령 동지들의 친절한 미소였다
그래서 동지들과 불화에 휩싸였을 때가 가장 힘들었고
그들에게 더욱 냉정해졌을 때
사상이 키우는 푸르른 나무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푸르름은 웃자란 희망일지도 모른다
성장해왔지만 자신할 수 없고
조금씩 내 자신도 무너져왔다는 것을
삶의 가락을 잃어왔다는 것을
성급한 나뭇잎 몇 장을 보고 생각 한다
나를 채우고 키운 것은 작고 따뜻한 것들이었다
아줌마의 통통한 웃음이었고
초록미술과 함께 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고
다리 하나를 내주고도 끊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따뜻함이었다
그래서 난 뒷길이 좋고
가장 치열할 수 있다는 것은
높은 사상이 전부가 아니라
작은 것, 허름한 것, 따뜻한 것,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사상 보다 먼저 가는 내 몸마음이었다
난 뒷길에서 웃자란 희망, 건조한 문자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아줌마의 통통한 웃음에 대하여
초록미술과 함께 하는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하여
다리 하나를 내 주고도 끊을 수 없는 따뜻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것들이 없으면 나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위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