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서점에서 시집을 뒤척이다
시집 한 권사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낙엽 다진 밤
지난여름, 손에 손에 쥐어졌던 꽃병을 생각한다
; 손아귀에 쥐가 나도록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휘발성으로 타는 분노 속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난 분명 탄환을 꿈꾸었다
13년 현장통제와 무쟁의를 청산한 여름 하늘
바람 불지 않아도
타는 땡볕이어도
통쾌하다
한 판 붙자
; 휘발성으로 타는 분노 속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머리띠를 묶은 조합원들
탄환으로 날아가 적의 심장에 박힐
절정의 꽃이었다
그러나 총성 보다 먼저 성탄이 오고 있었다
공장점거파업도, 분임조모임에서 형성되었던 노동자민주주의도
13년 무쟁의를 깬 그 뜨거웠던 정규-비정규 단결의 함성도
꽃병이 날아가는 포물선을 따라 한 점 불꽃으로 져 갔다
정리해고․손배가업류의 낙엽을 밟을 때마다
비명처럼 몸이 아프다
현장은 숨소리조차 죽었다
모두들 떠난 자리
난 홀로 정류장에 섰다
공장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나는 공장으로 간다 공장으로 향하는
내 눈빛은 아직도
곧 죽어도 함께 살아 낼 사랑인가
탄환을 꿈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