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대구에서, 대전에서 아내와 아이가 있는 나이 50의 사내들이
먼 객지 울산에 내려와 하청업체에서 일당 6만원을 받고
그것도 용역비까지 때이면서 일해야 했던 하청의 재하청인 사내들이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크레인 바스켓을 타고 지상 50m에 선 사내들이
얼마나 다리가 떨리고 두려웠을까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 악물며 견뎠을 것이다.
관리자들에 찍히기 싫어서 아무리 험하고 억울하더라도 군말 없이 일했을 것이다
그렇게 개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두 사내가 지상 40m에서 떨어서 죽었다
영안실에서 한 업체 동료가 술이 떡이 되어서 내 멱살을 잡고 운다
"하청들 다 죽어 가는데 위원장이란 놈이 뭐하고 있냐"고 엉엉 운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함께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주익 열사가 그랬을까?
조합원에게 목숨을 맞기고 지프크레인에 올라가도
현장은 조용했다
이제 줄 것이 목숨밖에는 없었는가
목숨으로도 조합원들을 살리고 싶었는가
그냥 내려오면 조합원들에게 해줄 것이 없어서
그게 싫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에서
투쟁의 심장이 되어
영원히 살고 싶었는가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을 살리고 싶었는가
이제 목숨조차 눈물을 부르지 못하고
이제 목숨조차 단결을 부르지 못하고
이제 목숨조차 투쟁을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침묵을 만들고
오히려 체념을 만드는
새로울 것도 없는 갑신년 새해
과연 내 투쟁의 심장은 살아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