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춘삼월에 눈이 내리고

선남 1 2,793

춘삼월에 눈이 내리고

 

 

하늘이 미쳤나 보다

매화가 피었고

벚꽃이 꽃망울을 맺었고

볕 좋은 담벼락에 개나리가 화사한데

진눈깨비가 날린다.

꽃샘추위란다.

 

넣어두었던 겨울 잠바를 꺼내 입고

벌써 몇 달째 묶인 임금에도

현장을 못 옮기고 일을 한다.

 

일을 해도 신명이 없다.

일을 해도 언제 돈이 나올지 모른다.

 

하늘이 미쳤나 보다

춘삼월에 눈이 내리고

세상이 미쳤나 보다

살아갈수록 팍팍한데

일을 할수록 가난한데

 

언제쯤 돈이 나올 것 같으냐고

묻는 것도 미안하고 답답한데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마누라도

지쳤는지 더는 묻지 않는다.

 

일을 해 놓으면 언제 받아도 받지

그 돈이 어디 가겠나,

실낱같은 믿음으로 위안을 삼고

몸을 팔아먹고 사는 신세 달라질 게 뭔가

헛된 희망을 버렸는데

 

세상이 미쳤나,

하늘이 미쳤나,

매서운 바람은 뼛속까지 시리고

답답하고 고달픈 신세타령도 지겹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더는 못 참겠다.

가슴에 찬 울분은 괜히

허공에 주먹질이나 해되고

힘없는 마누라에게 버럭 소리나 지르고,

사월도 중순이 넘어 서는데

눈이 내린다. 미친 하늘에서

미쳐가는 세상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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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선남
2010년 어느 봄 날이다. 3개월째 임금을 못받았지만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일을 한다. 겨울 밑 끝이라 아직 건설현장에 일판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고 임금이 체불되어도 다른 현장에 일이 나올때 까지 참는다. 눈이 내린다. 4월초 그 환한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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