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망루

선남 1 1,087


망루

 

이제 부를 이름도

그리워해야 할 가슴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아직 녹지 않은 도시의 뒤 골목길을 돌아

밀리고 쫓겨 다니며

모질고 모진 것이 목숨이어서

죽어도 죽을 수 없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을 수 없었던

길고 길었던 한 많은 세월,

 

그래도 살아남았기에 우리들은 희망이라 말했고

곁에 잠든 가족의 고단한 숨소리에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재개발의 청사진도

용산의 장밋빛 밑그림도

가진 자들의 축제일뿐,

월세 전세 인상에 숨소리도 죽이며 살아왔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개발은

또다시 정처 없이 떠 돌아야 하는

유랑의 세월이다

 

용역 깡패의 청부 폭력,

매일 밤, 반복되는 협박과

살기를 느끼는 공포

어둠이 두려웠다.

모든 것을 잃고

이미 떠난 이웃들도 공포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저들의 폭력을 피해 쫓겨 올라간 망루,

죽으면 죽으리라고 다부지게 마음먹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간절하게 살고 싶었고

두려웠던 것이다.

 

날이 밝기도 전에

크레인의 쇳소리

특공대의 위협적인 군홧발소리

그들의 구호 소리, 용역 깡패들이 쏟아대는 물대포

마지막 협상도 없었다.

투항하라는 권고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들의 지켜내기 위해

가지고 올라갔던 신나통, 화염병 몇 개

첨단장비로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에게는

우스운 장난감에 불과했다.

죽을 테면 죽으라고 밀어붙이는 저들 앞에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던 망루도 보잘것없었다.

 

이제 부를 이름도

그리워해야 할 가슴도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 볼 만하다고 믿으며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면

가난 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믿으면

그렇게 어리석은 믿음으로 살아왔던

한 많은 세월도 이제 다 타버렸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사람답게 살아 볼 날도 있겠지 하는

그 막연했던 믿음도 다 타버렸다.

이주 대책만 세워 준다면 미련 없이 떠나리라는

한 가닥 기대도 모두 불타버렸다.

 

개발 독재의 망령이

망루를 불태우고

아우성과 비명과 살타는 냄새

죽음의 검은 연기가 용산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죽어도 줄을 수 없었던 한 많은 세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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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선남
용산참사의 기록이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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