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詩가 지나간다.
바람이 스치듯 지나간다.
잊혀진 줄 알았던, 시가
교복을 입은 어린 여학생이 밝혀든 촛불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고 부끄러워졌고,
아직 채 피우지도 못한 꽃 몽우리라고 몇 자 적어보다가
노동에 지친 육체는 잠을 견디지 못했고
이윽고 새벽에는 생활에 쫓겨 일터로 나간다.
또 며칠이 지나고
끌려가는 촛불들을 보면서
가슴 저 밑바닥에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몇 자 적어놓고는 끝도 맺지 못한다.
소주만 몇 잔 마셨다.
바람이 스치듯 시가 지나간다.
궁색한 내 생활 속에서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던 시가 지나가고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던 시가 지나간다.
읽지 않으리라, 쓰지 않으리라던 내 마음의 외침은
못난 아집이었고, 내가 쓰지 않아도, 내가 읽지 않아도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지 않아도
사랑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하지 않아도
시는 그렇게 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그리워하는 그 무엇에
지독하게 좌절하고 난 뒤에
바람이 횅하게 불고 가슴이 시려
눈물을 흘린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시는 지나간다.
살아 있는 동안,
살아 있는 날들을 부끄러워하며
부끄러워서, 다시 사는 날들을 위해
시는 지나간다. 바람처럼 주변을 맴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