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서러운 가슴에 촛불을 밝혀다오

선남 0 1,108

서러운 가슴에 촛불을 밝혀다오

 

 

아카시아 향이 푸르른 오월이구나,

열다섯, 어린 너에게

그늘이 될까 두려웠다

못 배웠다는 것이

가난하다는 것이

하루 일이 끝나면, 또 하루 일을 걱정해야 하는

부모의 삶을 대물림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래서 말이다.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가슴이 덜렁 내려앉았고,

0교시 수업이 또 무거운 짐이었고

우열반을 편성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학원 하나라도 늘려야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오월의 향그런 꽃향기처럼

연초록 푸르른 네 꿈들이

우열반으로 나눠지고,

끝도 없는 경쟁으로 몰아붙여도

거저 공부하란 말밖에 할 수 없었구나,

 

딸들아,

이 아비의 서러운 가슴에 촛불을 밝혀다오

어둡고 답답한 가슴에 촛불을 밝혀다오

1등이 아니어도,

가지지는 못했어도

병든 소, 미친 소를 수입한다고 했을 때

그저 그런가? 했었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재벌을 위한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 한마디면 누구든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꺼져버릴 촛불이

여린 손,

바람 따라 흔들리는 촛불을 밝혔구나

 

포크레인 삽날 앞에 여린 풀 포기 같은

열다섯, 열일곱 너희들이 촛불을

생명의 불을 밝혔구나,

 

미친 소 너나 먹어 세요!”

촛불에 촛불을 옮겨 붙이고,

서투른 말 한마디가 가슴에 맺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먼저

눈물을 보이던 사랑하는 딸들아

학생의 본분은 공부만 하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너희들은 생명의 불을 밝혔구나,

 

오만과 독선으로 얼룩진 권력 앞에

생명을 밝히는 불을 밝혔구나,

어둡고 서러운 아비의 가슴에도

불을 밝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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