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이철복

선남 1 1,380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이철복

 

 

 

어둡게 하늘이 내려앉고

오전부터 진눈깨비가 날렸다.

바람이 불고, 높이 세워진 타워는 멈췄지만

멀리 떠나 온 객지공사

밥값에 여관비에 몸을 놀릴 수 없어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철근을 메고 장대를 세웠다.

 

가는 결속 선으로 철근이 역어질 때마다

흩어진 마음들이 묶이고, 흔들리는 마음들이 묶여

철근쟁이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겨울철 하루 일당벌이 객지 일을 마다 할 수 없어

일을 찾아 떠나왔지만

멀리 떠날 올수록 가족 생각은 더욱 간절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 돈을 보내 줘야하는데........

얼마간의 생활비라도 보내야 하는데.......

걱정이 더 앞섰는지도 모른다.

 

2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위에는

꿈속에서도 철근을 매는 꿈을 꾸었고

허공에 매달려 철근을 엮는 꿈을 꾸었다.

굵은 장대를 매다 옆으로 쓰러졌던 이형은

산재판정도 받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연락이 끊기 장형은 서울 어디 지하도에서 보았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아무도 확인은 하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이 없어도 걱정,

 

일해 놓고도 걱정,

근로계약서도 안전교육도 없이

원청, 하청 다단계하도급의 먹이사슬에

마지막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먹는

하루 오천원 만원씩 떼 가는 노타리패 지원팀까지

후려치고 등골 빼먹는 놈들만 득실거리는 공사판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지만, 몸 하나 밑천 삼아 살아가면서

땀 흘리지 않은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일을 두고 요령 부리지도 않았다.

하루 정해진 물량 앞에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3

 

우지마라 모진 세상살이,

죽어야 끝나는 지친 노동의 세월

새벽을 깨우는 알람 소리도,

일을 가자고 불러 되는 전화 소리도 없는

서럽던 세상살이 미련 없다마는

죽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지친 육신,

한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다오

철근쟁이 이씨가 아니라 이 철복

노동자의 이름을 불러다오

 

일 시키는 놈은 있고

등골 빼먹는 놈은 있고

세금 떼 가는 놈은 있고

법과 질서를 내세워 잡아 가두는 놈은 있고

철근쟁이 노가다꾼을 보호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눈발이 날리고 손등이 얼어 터지고

새벽부터 어둠이 질 때까지 일 한 돈,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강원도 객지일, 몇 푼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할 노임을 떼였는데

누구 하나 나서는 놈이 없다.

 

노동청도, 국토해양부도, 경찰도, 국회도

떨어져 죽고

경찰에 맞아 죽고

수십 명이 불에 타죽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분신을 해도

밀린 임금 달라고 하다 맞아 죽어도

어느 한 놈 책임지고 나서는 놈이 없다.

 

4.

 

지지라도 가난했기에

배운 것이 없었기에

운명이라 말했고,

어쩔 수 없는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했던

그 모진 세월 앞에 더는 울지 마라

 

가다 오다 공사판에서 만난 서러운 벗들아

천근만근의 무거운 철근 더미도

서로 받쳐주고, 들머리로 어깨에 메어주고

못난 운명을 타고 넘어

서러운 가슴들을 엮어 일으켜 세우듯

흩어진 마음들을 엮어

한 번 만이라도 노동자의 이름으로

세상에 우뚝 서다오

 

살아 있는 날이 죽음의 세월보다

더 견디기 힘든 노동의 세월을

 

일자리 걱정 없고,

일 한 노임 떼일 걱정 없고,

맞아 죽을 일도

불에 타 죽을 일도 없는 그 날까지

철근을 엮듯이

우리들의 서러움을 엮고

우리들의 분노를 엮어서

강철의 조직으로 뼈대를 세워다오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이철복

건설 노동자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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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선남
2008년 강원도 철근 노동자 이철복씨가 체불임금 2억원을 요구하다 현장 소장의 폭행으로 맞아 죽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씨 노무자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언제쯤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자의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 당시 강원도까지 연대투쟁을 다녀 오면서 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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