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열이 있으면
열을 내어놓고
스물이 있으면 스물을 내어놓고
단 하나뿐인
그것마저 다 내어놓고
싸움은 시작됩니다.
꿍쳐두고 남겨두고
슬며시 한 발 뒤로 빠질
잔머리 굴리면 투쟁은 시작되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태우며 불길을 일으키듯
생명을 죽이며 생명을 살려내듯
나를 버리고 전체가 하나 되는
우리 내부로부터 하나가 되어가는 투쟁입니다.
우리가 가진 마지막 투쟁의 무기
목숨을 걸고 단식을 시작합니다.
투쟁의 시작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다섯이 되고 열이 되고
천이 되고 만이 됩니다.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불길이 남아 있고
아직도 우리의 영혼 속에 하중근 열사가 살아 있듯
형산강 다리를 건너던 끝없는 물결은
200만 건설노동자의 뜨거운 피로 흐릅니다.
검찰과 경찰,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독재정권의 군홧발로 짓밟아대듯이
파업 파괴공작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고
단순참가자, 연대의 손길마저 공동정범으로 몰아
마녀 사냥하듯 무더기로 구속하면서
감옥은 건설노동자로 넘쳐납니다.
감옥은 마지막 한 명의 동지가 석방될 때까지
투쟁하는 건설노동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볼모가 아니라, 저들의 포로가 아니라
새로운 투쟁의 깃발이 되고 있습니다.
포항 동지들만 아니라
여수 광양 동지들만 아니라
플랜트, 토목 동지만 아니라
덤프, 타워 동지만 아니라
모든 건설노동자의 가슴에 휘날리는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
패배가 두려웠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노동자의 길
패배할 줄 알면서 피할 수 없었던 투쟁
수많은 패배와 좌절 속에 승리를 확신하고
구속되고 죽어가면서 노동해방의 길로 나아갑니다.
열이 있으면
열을 내어놓고
스물이 있으면 스물을 내어놓고
혼자서 안 되면 둘이서,
다섯이 안 되면 열이
열이 안 되면 천이 되고 만이 되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끈질긴 투쟁으로
지하에서 하늘과 맞닿은 타워까지
건설노동자 하나 되는 투쟁의 시작입니다.
피의 상징이고, 투쟁의 깃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