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유월의 거리

선남 1 983

유월의 거리

 

 

잊고 싶어서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싶어서

일찍 잠들어 버린 날은

어김없이 이른 새벽 눈을 뜹니다.

그리움은 잊고자 한다고

잊혀 지지 않는 줄 알면서도

당장에 잊고 싶은 어리석은 마음이지요.

뜨거운 아스팔트,

유월의 거리를

어찌 잊겠습니까.

거친 손 움켜쥐고 불덩어리처럼 하나로 엉겨

타오르던 그 거리를 어찌 잊겠습니까.

잊고자 눈감으며

더욱 또렷하게 되살아납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 순한 눈빛들

살아 꿈틀거리는 거리의 함성들

잊고자 한다고

잊혀지겠습니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선남
이 시는 어쩌면 운동평론가 논객들에게 경고하는 시다. 투쟁은 하나였는데 평론가는 왜그렇게 많은지 집회 연대한 번 오지 않았던 자가 쓴 평론서를 감옥에서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졌다 그래도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옥에서 4종류의 대구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평론을 보게 되었지만 단 하나도 옳바로 평가하는 것이 없었다. 구미 투쟁이 도화선이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구미투쟁은 지극히 계획적인 전술이었고 마치 우발적인 투쟁처럼 묘사했지만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획한 투쟁이었다. 내가 위원장이었으니까 3년전부터 투쟁을 준비하고 투쟁기금을 조금씩 모았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것이 조합원 3백명으로 2500명, 3000명을 동원하는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고용구조, 임금구조도 모르는 운동평론가들은 열심히 평론을 하고 말들을 보탰지만 내가 석방하고 나서 그 이야기들은 쑥들어갔고 반박을 하듯이 따지면 불특정 다수의 참여자에게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을 기획하고 준비한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하나 없이 평론을 자신들의 정파적인 입장에서 소설을 쓴 것이다. 운동을 망치는 것은 운동의 정파조직이라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 명
  • 오늘 방문자 498 명
  • 어제 방문자 459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64,743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